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전통적인 주력산업 경쟁력 갈수록 떨어져
‘성장’이란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차세대 핵심 성장산업 발굴해야

경제학의 한 분야로 ‘경제성장론’이 있다. ‘경제성장의 원인을 분석하고, 나아가 바람직한 성장의 유형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부문(다음 백과)’으로 정의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떻게 하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을 증가시켜 실질 국민소득을 높일 것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경제성장이란 생산요소의 투입(투자) 혹은 생산 효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생산량이 중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오로지 양적인 측면에서의 경제적인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경제 진보(발전)의 개념을 경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경제외적인 요소까지 고려하는 ‘경제발전론’에 비해 ‘경제성장론’은 순수하게 경제 변수들만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투자와 효율성 제고를 통한 소득 증대라는 전통적인 성장 이론에 익숙한 우리에게 최근 들어 새로운 성장이론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성장 정책으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투자와 별개로 가계소득이 증가하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다소 생소하게 들렸지만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근본 없는 이론은 아니다. ‘임금주도성장론’이라는 이름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2010년경부터 제안한 성장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 그동안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의 부작용으로 양극화 현상이 극심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가계 소득 증가와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이 되는 신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면서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심지어 양극화 해소는 호전되기는커녕 통계청 자료에서도 확인돼 듯이 올해 들어 더 악화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달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현재의 고용 여건과 대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호소가 크게 기대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소득으로 성장하려면 먼저 고용이 증대되고 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합당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정부도 뒤늦게 혁신성장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퇴진을 기점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2선으로 후퇴시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에 야당을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를 강하게 주장하는 한편, 그 대안으로 새로운 성장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출산주도성장’이라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 같은 개념을 들고 나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같은 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성장론(가칭)’을 주장했다. 계층별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와 투자를 진작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비해 국민성장론은 민간 주도의 자율성 확대와 기업 투자를 늘려 생산과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소득보다는 투자가 우선되어야 ‘생산증대→소득·소비 증가→경제성장’의 순환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얼핏 소득주도성장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인 성장론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론에 ‘국민’이라는 이름만 붙인 것에 불과하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전통적인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 대기업·수출 중심의 성장 정책이 한계에 온 것은 명확하다. 더욱이 기존의 성장 정책으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새로운 성장 정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이나 ‘국민성장’ 등은 나름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핵심이 되는 차세대 성장 산업에 대한 고민도 없이 ‘성장’만 주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성장을 이끌 성장 동력 산업이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차세대 성장 산업을 깊이 고민하고, 이들 산업이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 개혁 등 제도적 환경을 정비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중국 춘추전국의 혼란한 시기에 천하를 바로 잡을 다양한 사상과 이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제자백가(諸子百家) 혹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 온갖 성장이론이 나오는 것을 보니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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