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 많이 사용하면서 장기기억 비활성, ‘디지털 치매’
책 소리 내서 읽고, 매일 1시간 붓글씨하면 뇌신경 자극

“인터넷은 사람의 뇌를 얇고 가볍게 만듭니다. 온라인에 쏟아지는 정보를 ‘훑어보는 습관’을 만들어 호흡이 긴 글을 인내심 있게 읽어내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 IT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 인터넷이 우리의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또 인터넷이 인간의 뇌 구조를 산만하게 바꾼다고 했다. 뇌는 가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인터넷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면 주의력 사고력 공감능력 열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소성(plasticity·可塑性)’은 외력에 의해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의 성질을 일컫는다.

카는 특히 “IT기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인간 뇌의 단기기억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장기기억을 다루는 신경은 점차 비활성화된다”고 경고했다. 단기기억(短期記憶)은 경험한 것을 수초 동안만 의식 속에 유지해 두는 기억작용이고, 장기기억(長期記憶)은 경험한 것을 수개월에서 길게는 평생 동안 의식 속에 유지하는 기억작용이다. 가령, 새로 입수한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는 동안만 기억하는 것은 단기기억 작용이며, 가족의 전화번호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장기기억 작용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이전엔 자신의 집 전화를 비롯해 친구, 친척, 회사의 전화번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이를 꺼내 전화를 거는 게 생활화되면서 가족의 전화번호까지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기억의 단기화’ 현상이다.

프랑스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산업화 이후 우리의 의식은 산업화된 테크놀로지에 의해 덮어씌워져 버렸고, 우리의 지각과 상상력은 주체적인 의식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의 외재적이고 기술적인 과정에 의해 대체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기억기술’은 한 단계 더 산업화됐고, ‘기억의 산업화’가 인간 정신의 빈곤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기억의 산업화’는 PC와 스마트폰의 검색기능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검색’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니 독서도 학습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길이나 지명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앱으로 확인하면 된다. 그러다보니 사색 사고 사유하지 않는다. 갈수록 ‘기억의 단기화’가 심화 확대됨으로써 인간 정신은 황폐화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런던대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 과다 사용은 ‘수면 부족’과 ‘마리화나 중독’보다 지능지수(IQ)를 더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청소년 약 2600명을 2년간 추적 조사해 스마트폰을 자주하는 청소년일수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스위스의 열대 및 공중보건 연구소는 최근 12~17세 스위스 청소년 약 7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량과 기억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한 결과 스마트폰 전자파가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기억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치매’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치매’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개인의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증상이다. 얼마 전 일본의 고노 임상 의학 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7가지 디지털 치매 자가 진단법을 발표했다.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외우는 전화번호가 회사와 집 전화 외에 몇 개 되지 않는다.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와 나눈 대화 중 80%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다. 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신용카드 계산서에 서명할 때 외에는 거의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처음 만난 사람으로 착각한 적이 있다. ‘왜 같은 얘기를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 장치를 장착한 후로는 지도를 따로 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의 7가지 항목 중 한 가지 이상은 해당될 것이다. ‘디지털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근 기술철학(philosophy of technology)의 최대 과제는 ‘기억의 장기화’다. 어떻게 하면 기억을 증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박성우 우송대교수는 “서양에선 답을 찾지 못했다. 동양으로 눈을 돌려 찾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우리의 기억을 증진시키는 전통적인 수련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독경(讀經)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성경 불경 사서삼경 등 경전을 45분 정도 소리 내어 읽는다. 매일 독경을 하다보면 경전의 심오한 내용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소리가 뇌세포를 활성화시켜 마음도 차분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소리로 하는 ‘디지털 디톡스’의 최고 경지다. 불교에선 독경을 ‘소리공양’이라고도 한다. 필자는 50여 년 전 서당에서 독경한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둘째, 서예(書藝)다. 매일 1시간 이상 붓글씨를 연습하다보면 몰입에 의해 뇌신경 연결망이 바뀌고 고도로 전문화된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이 개발된다. 스웨덴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에 따르면, ‘심적 표상’이란 사물,관념, 정보, 이외에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이다. 가령 ‘모나리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즉시 머릿속에 해당 그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때 떠오른 이미지가 모나리자에 대한 사람들의 ‘심적 표상’이다. 훌륭한 ‘심적 표상’을 갖고 있으면 놀라운 기억력, 패턴 인식 능력, 문제해결 능력, 고도의 전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단, 붓글씨를 연습하면서 ‘날파관(捏破管·붓대가 부서지도록 힘 있게 붓을 잡고 글씨를 쓴다)’의 자세로 ‘역입평출(逆入平出·붓을 필획의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서 나오게 한다)’, ‘일파삼절(一波三折·한 필획을 쓰면서 필봉을 3번 새로 바꾼다)’ 등 용필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장기기억에 저장된다. ‘민족혼(民族魂)’이 살아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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