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의 혀’ 아닌 최익현 ‘도끼 상소’ 본받아 직언해야

‘권력을 잡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마귀로 바뀐다’는 옛 말이 있다. 왕이나 대통령이 집권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오만불통독선의 지도자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왜 그렇게 변하는 것인가. 첫째, 참모진들이 ‘달달한 보고서’로 지도자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막기 때문이다. 둘째, 문고리 비서진들이 ‘인의 장막’을 쳐 직언(直言)하는 장관의원들과의 소통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셋째, 엄청난 예우를 받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지존(至尊)’이란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의 주변에는 ‘레드팀(Red Team)’이 필요하다. ‘아니 되옵니다’며 직언을 하는 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때 대신(大臣)들은 황제에게 상소할 때 매우 엄중했다. 서재에서 관복(官服)을 입은 채로 문을 잠그고 상소문을 썼다. 가족들이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도록 했다. 관(棺)도 미리 준비했다. 상소문이 완성되면 관을 가지고 조정에 나갔다. 황제가 상소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작정이었다. 관을 지고 상소를 올린 ‘지관상소(持棺上疏)’였던 것이다. 당나라 초기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은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에게 “아니 되옵니다”를 300번이나 외쳤다. 그러나 이세민은 그를 처형하거나 유배를 보내지 않고 오히려 중용했다. 그의 정직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역사상 위징은 직간(直諫)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선 관 대신 도끼를 지니고 상소를 올렸다. ‘지부상소(持斧上疏)’, 즉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이른바 ‘도끼상소’였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도끼상소’를 올린 인물은 고려말 우탁(禹倬)이다. 우탁은 충선왕이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인 숙창원비 김씨를 숙비로 봉하자 백의(白衣)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아버지의 후궁을 취한 것은 패륜이라며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목을 치라”고 직간했다.

조선 선조 때 조헌(趙憲)의 ‘도끼상소’도 유명하다. 조헌은 1591년(선조 24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겐소(玄蘇) 등의 사신을 보내어 ‘정명가도(征明假道 :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길)’를 요구했을 때, 충청도 옥천에서 상경해 궁궐 밖에서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며 3일 동안 왜적 방비책이 담긴 ‘도끼상소’를 올렸다. 물론 선조는 거부했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고종 때 최익현(崔益鉉)도 도끼상소를 올렸다. 1876년(고종 13년) 2월 강화도에서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서 통상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 교타카(黑田淸隆)의 목을 벨 것을 고종에게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 제목은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 : 도끼를 지니고 대궐문에 엎드려 화의(和議)를 배척한다)’였다. 그는 “바라건대 이 도끼로 신에게 죽음을 내려주시면 조정의 큰 은혜일 것이며, 지극히 애통하고 절박해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는 문장으로 상소를 맺었다. 그러나 고종은 이를 거절하고 그를 흑산도로 유배를 보냈다.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내줬다.

‘2기 청와대’ 참모진이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대통령비서실장에 노영민 주(駐)중국대사, 정무수석에 강기정 전 민주당 의원, 국민소통수석에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을 임명했다. 노 실장과 강 수석은 ‘친문’성향이 강한 정치인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강화되고 개혁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노 실장과 강 수석은 ‘친문’의 꼬리표를 과감하게 떼어내야 한다. 한 때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결단코 청와대에선 ‘친문’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 당나라 위증처럼 ‘아니 되옵니다’를 300번 이상 외칠 수 있는 ‘레드팀’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야당의 정치적 역학관계, 그 의도와 전략전술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 정부와 여당의 약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반대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레드팀이 돼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탁조헌최익현의 ‘도끼상소’를 본 받아 죽을 각오로 직간할 수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착한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입에서 달달하게 노는 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레드팀의 키워드는 ‘묵언(黙言)’이다. 노 실장과 강 수석은 ‘묵언정치’의 진수를 보여주기 바란다. “사람이 차면 말이 없고, 물이 차면 흐르지 않는다(人平不語, 水平不流)”라 했던가.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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