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내년 총선용 선심성 정책
반짝 경기 회복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 ‘독’

정부는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확정하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의결했다. 이번 결정으로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관계자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사업계획이 구체화되어 있어 신속하게 추진 가능한 사업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경남 거제와 통영, 울산, 전북 군산, 전남 목포 등 산업 및 고용위기 지역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고려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반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사업은 원칙적으로 배제해 지역균형발전 사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예타 면제 사업 대상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찬반양론이 시끄럽다. 지난 정부에서 토건사업을 통해 경기 활성화 대책을 펼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형식적으로 했거나 생략한 채 강행된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홍남기 부총리는 브리핑을 통해 4대강 사업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SOC 외에도 연구·개발(R&D) 투자 등 지역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을 함께 포함했다. 또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제안한 사업을 중앙이 지원하는 보텀업(Bottom-up)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4대가 사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비상 상황도 아닌 시점에 SOC 사업을 무더기로 선정하고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배경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SOC 등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신규 사업에 대해 경제성 등을 미리 검토해,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이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경제성 분석도 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선심성 공약에 가까워 보인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타 면제 사업 추진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번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권 출범 초기 경제 정책도 ‘사람중심의 경제’를 표방해 지난 정부와 차별화 했다. 이전의 대기업 및 토건 중심 성장에서 벗어나 소득주도성장으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혁신성장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첫해 예산안을 보면, 보건·복지·노동예산과 교육예산이 각각 12.9%, 11.7% 증가한 201조원을 책정해 전체 예산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물적 투자 축소 방침에 따라 SOC 예산은 20% 삭감된 17조7000억 원에 그쳐 ‘사람중심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 볼 수 있었다. 비록 지난해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성장이 정체되고 신규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곧바로 혁신성장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투자 환경을 개선해 나갔다.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고 혁신성장의 한 축인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기업 투자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올해 우리 경제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무분별한 SOC 사업을 지양하겠다는 경제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예타 면제 사업의 발표로 혁신성장은 시작부터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정부 정책이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면 기업은 불안해서 투자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특히 혁신성장과 관련한 대규모 투자와 신규 사업 진출에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아무리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밥을 먹어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예타 면제 사업으로 일부 지역의 숙원사업이 신속하게 처리되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게 작은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혁신성장이 시급한 지금 기업의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어 미래를 잃어버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악수(惡手)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백년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백년을 지탱할 정책을 개발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면서부터 무너지는데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과 청와대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추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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