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죄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
유흥업소·엔터테인먼트 산업 정비 시급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보다 강화해야

“음지의 마약사범 ‘국내 최대 40만명’” 세계일보 5월4일자 1면 기사 제목. 이 보도에 따르면 박성수 세명대 교수는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한국경찰연구’ 2019년 봄호)에서 국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暗數率·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28.57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16년 마약류 사범 1만4217명을 기준으로 하면 전체 마약류 사범은 40만4672명, 2018년 1만2613명을 기준으로 하면 36만353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엄청난 숫자다. 대한민국이 ‘마약공화국’이란 말인가.

지난 4일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는 ‘황하나와 버닝썬-VIP들의 은밀한 사생활’ 편을 방송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버닝썬에서 열린 한 화장품 브랜드 행사에 참석한 30대 여배우가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행동을 보였다는 제보를 방송했는데, 이 내용이 며칠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앞서 경찰청은 지난달 25일 지난 2개월 동안 ‘마약류 등 약물 이용 범죄’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1746명을 검거하고, 그 중 58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 클럽의 경우 버닝썬 대표 등 14명과 소위 ‘물뽕’(GHB·물 같은 히로뽕) 유통책 2명도 구속됐다. 연예인 로버트 할리, 박유천씨를 비롯해 재벌가 3세들도 검거 구속됐다. 마약 종류별로는 향정신성의약품 사범이 83.2%로 가장 많았고, 대마사범(14.8%)과 마약사범(2%)이 뒤를 이었다.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필로폰 등 마약은 인간 두뇌의 화학적 특성을 변화시킨다. 일시적으로 뇌 세포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생성하는 ‘쾌(快)’를 촉발시킴으로써 정상적인 도파민 균형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대마를 흡입했을 경우도 기억 형성을 와해시키며 단지 몇 분 전에 학습한 정보의 즉각적 회상도 방해한다고 한다.

마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두뇌는 내성(tolerance)을 발달시킨다.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더 많은 양의 마약을 요구하게 되고 갈망 상태를 거쳐 결국 중독(addiction)의 늪에 빠지게 된다. 갈망 상태부터 뇌 세포의 색깔이 변하며 중독에 이르면 두뇌의 신경화학 구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사용을 중단하면 격렬한 금단증세를 일으켜 마약을 사용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정상적인 사람도 폐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마약사용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마이어스(David Miers)  미국 호프대 교수는 “마약은 신속하게 혈관으로 흘러들어가 물밀 듯이 황홀감을 만들어내고, 도파민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의 두뇌 공급을 고갈시킨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약물의 효과가 약화됨에 따라 나락과 같은 우울이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울증이 심화되며 사람이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격성을 촉발시키는 상황에서 마약을 복용하면 반응성이 증대된다고 한다. 가령, 쥐들의 발바닥에 쇼크를 가하면 서로 싸운다. 마약을 주입하고 쇼크를 가하면 더 많이 싸운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마약을 통해 정상적인 인간의 뇌 구조가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좀처럼 쉽게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다. 김대진 카톨릭대 교수는 “한 번 마약을 복용해도 그 부작용은 적어도 2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지난 2002년부터 2년 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South Carolina Medical University)에서 연구할 때, 한 정신의학과 교수는 “젊은 시절 실험삼아 마약을 한번 복용했는데 20년이 지났는데도 비만 와도 마약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약사범 40%가 재범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지의 마약사범’이 4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결단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재난상태나 다름없다. 경찰이 마약사범을 검거하고 구속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유흥가를 비롯해 일반 가정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마약범죄를 완전 소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약의 생산 유통 판매를 통해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꿈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약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게다가 ‘감각적 쾌락(快樂)’을 추구하는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고 본다.

이제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표피적인 단속 검거 구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주변에는 한 발짝만 나가면 ‘감각적 쾌락’에 빠져들 수 있는 유흥업소들이 즐비하다. 이대로 두고 마약사범을 단속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근본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유흥업소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향락산업’은 군사독재정권의 산물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 GDP(국내총생산)를 올리기 위해 주택가 주변에도 술집을 허용했다. 이른바 ‘카페’를 가장한 유흥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전국 유흥업소 종업원들의 ‘팁’을 GDP에 포함시키자 마이너스 성장이 플러스 성장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들과 쉽게 유착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찰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단체가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정비해야 한다. 버닝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국내 상당수 엔터테인먼트 업체 이면에는 ‘유흥업소-마약-성매매’란 ‘환락 3종 세트’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찰-검찰-국세청이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마약사범의 상당수가 연예인들이란 점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 K팝 등 한류를 위해서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건전한 문화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책임 또한 정부에게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셋째, 인간의 ‘쾌(快)DNA’가 건전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초 중 고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 문학 미술 음악 서예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감성과 인성이 균형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대입에 반영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쾌’는 몰입을 통해 이뤄진다. 몰입으로 가는 데는 긍정과 부정의 수단이 있다. 도박과 마약은 부정적 수단이다. 도박 마약 몰입은 인간의 뇌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뇌’로 만든다. 반면 독서 서예 미술 음악은 긍정적 수단이다. 잘하면 인간의 뇌를 ‘성인(聖人)의 뇌’로 만든다.

율곡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장(立志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진실로 진리를 알고 실천해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착한 인간의 본성을 처음 모습으로 되찾는다면, 조금도 보태지 않더라도 모든 선함이 다 풍족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어찌 훌륭한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하지 못하랴.”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실천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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