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귀족 두는 왕정 대신 민주공화제 채택…연임 후 대통령직도 내려놔 
약속 헌신짝처럼 버렸던 이승만 등 다른 지도자들의 비참한 말로와 대비 
트럼프 영국 국빈 방문 당시 좌충우돌해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 경찰’ 

지난 3일부터 5일(영국 시간)까지 이어졌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영국 국빈 방문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의 영국 방문 기간 동안 반 트럼프 시위대가 기저귀를 찬 그의 인형을 들고 나와 조소를 보내는가 하면, 영국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만나기를 거부하는 등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은 분위기였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가만있지 않고 설전을 벌이는 등 상한 기분을 드러내긴 했지만,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기댈 곳은 견고한 대서양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 밖에 없는 데도 그런 미국의 대통령을 홀대하는 모습을 보고 영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혈맹을 맺고 있는 대서양 동맹인 미국과 영국은 꽤 닮은 점이 많은 이익공동체이기도 하다. 우선 주축을 이루는 국민이 앵글로-색슨계이고, 미국 자체가 영국인들이 건너가 조성한 식민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나라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서로가 총부리를 겨눈 구원(舊怨)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독립 이후 양국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인 것은 초기에 단 한차례 밖에 없었고, 그 이후 국제무대에서는 국익 측면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으로서 독일에 맞서 승리했고, 제2차 대전 이후 냉전 시기에는 영국이 맡아오던 ‘세계 경찰’의 역할도 미국이 물려받는 등 역할을 교대하며 비교적 우애 좋게 지내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국은 왕실을 지닌 입헌군주제 국가이고, 미국은 선거로 최고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제 국가라는 점이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 주목적이 5일 런던 근교 포츠머스에서 치러진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의제가 없어 가십성 기사들이 더 주목을 받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다수 영국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트럼프 흠집 내기’ 기사들이 더 흥미를 끌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언론도 타국의 대통령을 비웃는 가십성 기사보다는 좀 더 진지한 면을 찾아 기사화했어야 했지만, 그저 외신들이 주목하고 전해주는 기사 방향만 따라다닌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언론의 가십 기사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성인 자녀 네 명을 모두 동반해 구설에 올랐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를 본 네티즌들이 ‘본인들이 왕족이며, 자식들도 왕자, 공주인 줄 착각한다'고 비아냥거렸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왕실이 버킹엄 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대통령 부부만을 공식 초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해 여러 자녀와 함께 참석해 비난 여론을 무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왕족이 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자, 공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통령제 국가가 아닌 왕정 국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실제 미국의 독립 영웅들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건국 초기에 유럽처럼 왕과 귀족을 두는 왕정 국가를 구상한 적이 있었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을 주축으로 한 군부 인사들과 상류층들의 모임이었던 ‘신시네티 소사이어티’라는 조직에서 실제로 이를 검토했던 것이다.

미국을 건국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 왕정 국가가 대부분인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마인드로는 전혀 이상할 것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했어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지금도 미국 워싱턴 내에 각국 대사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대사관 길’에는 신시네티 소사이어티의 본부 격이었던 앤더슨 하우스가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그러나 결국 독립 영웅들은 왕정과 귀족제를 포기하고 누구나 선거를 통해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대통령제라는 독특한 정치 제도를 고안해 실행에 옮겼다. 왕정과 귀족제를 포기한 이유는 당대의 본인들은 건국을 위해 기여한 바가 있어 그 혜택을 누린다 치더라도, 아무 것도 안 한 후손들까지 선대의 업적에 무임승차해 왕위와 귀족직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반박할 수 없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대통령은 또 한 번의 위대한 선택을 한다. 약속대로 두 차례만 연임한 뒤에 다음 대통령 선거를 치르도록 한 것이었다. 그가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해도 아무도 막을 사람은 없었지만 깨끗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을 더 유지하려 했던 세계 여러 나라 초대 대통령들의 행보와 비교해 볼 때 위대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을 져 버려 말로가 비참했던 지도자들과 정반대의 선택을 했던 워싱턴 대통령의 처신은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강국이 되는 바탕이 됐다. 실제로 당시 영국의 한 외교관은 “앞으로는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것이며, 다행인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라며 두려움 반, 안도의 반으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미국이 왕정 국가로 출발했거나 워싱턴 대통령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최강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과 관련한 가십성 기사를 접하며 떠오른 단상이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졌지만, 지도자라면 역사와 미래를 생각하는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겼으면 한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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