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부총리 “기업이 청년 실업과 사회적 계층 이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장관 재임 시절 성장론자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표방한 경제 정책 중에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김동연 전 부총리는 혁신성장을 담당했다. 한때 정책의 무게 중심이 소득주도성장으로 흐르면서 혁신성장을 주장한 김 전 부총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왔다. 심지어는 ‘김동연 패싱’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김동연 패싱’이라는 것이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을 흔들기 위한 일종의 프레임이기는 했지만, 관료 출신 성장론자인 김 전 부총리와 진보성향 학자 출신의 청와대 경제팀과는 경제를 보는 뚜렷한 시각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속도론으로 대응해 장 전 실장과 충돌하는 등 성장과 관련해서는 소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전 부총리는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환경을 개선으로 기업(특히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방향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실제로 그는 장관으로 있을 때 삼성전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규제 완화와 관련한 건의를 듣는 한편, 혁신성장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민간 기업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투자 구걸’이라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고 말할 정도로 기업 투자와 혁신성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랬던 김 전 부총리가 최근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고, 나아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9일 제주 서귀포에서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2019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그는 “교육이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고 계층 이동을 단절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면서 계층의 단절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바로 경제위기라 말하고 있다. 경쟁의 격화, 이권추구 사회는 결국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이동의 단절을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을 빚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기업이 청년 실업과 사회적 계층 이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하고 있다.

보수적인 경제관료 출신이며 성장론자로 알려진 그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계층 이동의 단절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해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인식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추진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해소방안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청와대 경제팀이 분배 측면을 강조한 반면, 김 전 부총리는 기업의 역할을 통한 성장 측면을 주장해 약간 결을 달리한다.

김 전 부총리의 견해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는 부자들의 행위를 막아야 올바른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디턴 교수는 경제 성장으로 인간의 삶은 개선되었지만, 가난과 빈곤에서 탈출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디턴 교수는 분배보다는 기업가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특히 교육기회의 박탈이 계층 간 이동을 가로 막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디턴 교수나 김 전 부총리가 경제적 불평등을 적극적인 분배정책으로 풀어나가려는 의지는 부족하지만, 이것을 사회적인 문제의 중심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요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가 쏙 들어가 버렸다.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경기 활성화에  시선이 집중되고 분배 문제는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과거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경제적 불평등 혹은 양극화는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이 결국 경제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이론으로 둔갑해 전면에 내세웠을 때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적 불평등(양극화)을 해소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정책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가운데 전 부총리가 이를 다시 상기시킨 것은 시의적절한 지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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