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 싫다며 이슬람 지배 선택…터키 예속 벗어날 길 없어
문재인 정부 싫다며 일본의 도발 정당화하는 일부 세력 반성해야

많은 사람이 기독교 분파하면 크게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를 떠올린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두 분파만 있는 게 아니다.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에서 분파하기 전에 로마 가톨릭과 세력을 다투던 동방정교회가 있었다.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있다. 다만 그 이름 앞에 러시아정교회나 불가리아정교회처럼 나라 이름이 붙기 때문에 여러 분파가 있는 것처럼 보일뿐인데, 15세기까지만 해도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계를 양분하던 세력이었다. 기독교 초기는 물론 중세 때만 해도 로마 가톨릭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었다.

그렇게 강력하던 세력이 왜 지금은 존재감조차 크지 않고, 왜 나라별로 쪼개졌을까.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 그 출발점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 침략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마지막 남은 보루였고, 동방정교회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동방정교회 사람들은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의 침략을 앞둔 상황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같은 기독교권인 로마 가톨릭과 병합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존속해 이슬람 권력자의 통치를 받을 것인가가 갈등의 내용이었다.

결국 이들은 “추기경의 모자를 쓰느니 차라리 술탄의 터번을 쓰겠다”면서 이슬람의 지배를 선택했다. 비록 로마 가톨릭이 같은 종교지만 한때는 자신들에게 뒤쳐졌다고 생각했던 분파가 자신들을 복속시키려고 하는 게 싫다며, 오히려 정반대 종교인 이슬람 세력에 굴복하기로 한 것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곧 함락돼 이들은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여기서 최근 일본의 경제 도발과 관련해 집권 세력이 싫다며, 일본이 단행한 도발의 정당성을 더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세력이 떠오른다. 정권을 잃은 정치 세력이 새 정권의 허점을 파고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켜야 할 선은 있다. 적어도 국익 측면에서 외부의 도발까지 정당화시켜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집단은 외세 의존적 세력과 일부 언론이다. 일부 집회에서는 지금의 정권을 지지하느니 오히려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소재는 물론, 일본이 한국을 공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한국이 곧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헐뜯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어설픈 정권 때문이 오래전에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의 제국 감성을 불러내 큰일 났다는, 일본인이 써도 스스로 민망해 했을 글을 진지하게 지면에 담은 언론도 있다.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정권에 대한 원한이 하늘에 닿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일본이 세계 무역에서 절대 강자도 아니고, 한국이 반도체 소재로 무너질 정도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그들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지금의 정권이 싫기 때문에 근거도 없이 일본을 추켜세우거나 심지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도 560여 년 전 이슬람 통치자를 선택했던 동방정교회가 오늘날 어떤 굴욕을 당하고 있는지 알면 오싹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는 동방정교회 대주교부터 갈아치웠다. 굴욕은 이어진다.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그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대주교가 처형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발칸 반도의 동방정교회권 국가에서 민족주의와 세속주의가 거세지면서 각 나라마다 자체적인 독립 교회가 세워졌다. 러시아와 불가리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라 이름을 앞세운 정교회가 세워졌고, 독립한 그리스도 별도의 그리스정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동방정교회의 주축이자 뿌리인 콘스탄티노플 교구는 여전히 오스만제국의 후계 국가인 터키 공화국의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주교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터키 법에 따라 터키 시민권자여야 한다. 심지어 대주교를 선출하는 기관은 주교 총회지만, 임명권은 법적으로 터키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처럼 한 때의 잘못된 선택으로 동방정교회는 무려 560여 년이라는 굴종의 세월을 지냈고, 앞으로도 벗어날 가능성은 없다. 종파는 살아남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치욕적이다.

우리는 이미 백여 년 전 잘못된 선택으로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때와 똑같이 일본의 위협 앞에 굴복하자는 무리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들을 보자니 동방정교회가 겪는 굴종의 역사가 떠오를 만큼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는 싫은 정권만 무너트리면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돼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시 일본에게 굴복한다면 아마도 그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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