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공인에게 비판 검증 야유 조롱 풍자를 요구

“명예훼손이 민법에서 금지되고 있음에 비추어,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적 동향에 맞추어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형법에서 삭제해야 한다. 특별보고관은 공무원과 공공기관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은 견제와 균형의 일환으로서의 대중에 의한 감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히 공무원, 공공기관 및 기타 유력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포함해 비판적 의견을 수용하는 문화를 조성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촉구하며, 이러한 문화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다.”

프랑크 라 뤼(Frank La Rue)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11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 17차회기에 의제 제3호로 이 같은 내용의 한국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2010년 5월 6일부터 17일까지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표현의 자유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한 것이다. 당시 프랑크 보고관은 여의도 MBC본사를 찾아 한 달여 째 파업 중인 이근행 MBC노조위원장을 비롯해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광우병 보도를 했던 ‘PD수첩’의 송일준·이춘근PD,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 등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바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잇단 명예훼손 고소‧고발에 대해 “국가, 공무원이 언론, 시민의 비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 자유로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011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일반총평’ 제34호에서 “당사국(한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형법 적용은 가장 심각한 사안에서만 지지돼야 하며, 자유형은 결코 적정한 형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2017년 11월에도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정례 검토(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하라고 주문했다. 가급적 명예훼손을 손해배상의 문제로 다루라는 것이다.

가령, 김대중 정부 시절 최장집 대통령정책기획자문위원장(고려대 교수)은 자신의 논문을 ‘친북’적이라고 보도한 ‘월간조선’에 데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학자들은 이를 공직자와 언론 간의 충돌을 해결하는 ‘적정한 방법’으로 평가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 시절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등은 MBC ‘PD수첩’ 제작진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왜곡 보도했다는 이유로 민 형사소송 모두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적정한 방법’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의 ‘한겨레’ 고소는 유엔의 권고에 어긋날뿐더러 공직자와 언론 간의 충돌을 해결하는 ‘적정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한겨레는 지난 10월 11일 윤 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윤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검찰이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마무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고, 윤 총장은 보도 당일 의혹을 보도한 기자 등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서울 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8일 ‘검찰총장은 고소를 취하해야 한다’는 성명에서 “보도 내용에 잘못이 있었다면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검찰총장이 이를 가리는 데에 고소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언론중재위원회란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검찰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검찰 수장이 형사사건으로 이번 보도를 고소한 것은 힘으로 언론을 제압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필자도 이런 고소를 당한 경험이 있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28일 ‘정윤회 국정개입은 사실’이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제목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자 당시 청와대는 이날 오후 손교명 법정대리인을 통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한 필자를 포함해 편집국장, 사회부장, 사회부 기자 3명 등 6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인은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부속비서관·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8명이었다. 물론 2016년 7월 1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당시 이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분(무혐의 처분)으로 종결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필자와 고소를 당한 세계일보 기자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동시에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대한 추가 보도가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검찰총장과 청와대 비서진은 공인이면서 사회적 강자다. 언론도 사회적 강자이지만 특히 검찰총장은 보다 막강한 사회적 강자다. 그런 검찰총장이 언론보도에 의해 명예감정을 침해받았다고 해서 형벌권을 동원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공인, 사회적 강자에게 비판 검증 야유 조롱 풍자를 감내할 것을 요구한다. 견제와 균형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공인에게는 ‘권(權)’보다 ‘균(均)’이 우선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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