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홍콩의 중국화’로 기울어져
민주화 요구 커질수록 중국 대응 거칠어질 수밖에 없어

지난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 행사의 일환으로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화려한 열병식이 진행됐다. 1년 이상 지속된 미·중 갈등과 겹쳐져 이날 행사는 치밀하게 준비됐다. 중국 정부는 열병식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했다. 최소한 열병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는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당일 오후 홍콩에서 시위하는 고등학생을 향해 경찰이 발포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국제 사회의 관심은 일제히 홍콩으로 향했다. 베이징의 성대한 열병식 이슈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10월 1일 베이징과 홍콩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베이징 광장에서 거행된 화려한 열병식은 그동안 중국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과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의 전방위적인 견제에 대응하고자하는 중국 정부의 초조함도 엿보인다. 다음으로 홍콩에서 시위중인 고등학생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해 중상을 입은 사건은 현재 홍콩 시민이 처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이날 세계의 시선이 베이징에서 홍콩으로 돌린 것은 중국이 홍콩을 마음대로 처리했다가는 세계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이 반환되었을 때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 전제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비중이 컸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지금은 3~4%에 불과하다. 도시 기준으로 봐도 GDP 기준 홍콩의 경제력은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이고 지난해부터는 선전(深川)에도 추월당했다. 반환 후 20년 만에 중국 경제가 홍콩을 집어 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의 지위가 이제는 중국의 여러 대도시 중 하나에 불과할 만큼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홍콩 시민들의 폭넓은 자치 요구(혹은 민주화)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정치·경제적인 이유는 오래전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예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1992년 홍콩을 방문한 리 총리는 한 TV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이 보는 홍콩의 가치는 경제뿐이다. 정치적 모델로 삼지 않는다. 홍콩이 민주정치 개혁을 추진한다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경제적 번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홍콩 모델을 받아들이면 주변 지역(광둥성)은 물론이고 나아가 중국 전역에 걸쳐 정치·제도적인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시진핑(習近平)까지 중국은 지속적으로 경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치체제는 체제 내 개혁이라는 완만한 변화에 그치고 있다. 즉 제한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강력한 정부가 주도하는 싱가포르 방식의 발전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생각하는 홍콩의 역할은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과 선진 기술 조달 창구 이상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중국의 해외직접투자(FDI)의 약 70%가 홍콩을 통해 들어왔으며, 홍콩 증시를 통해 수많은 자금이 상하이 증시로 투자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한 첨단 기술들이 홍콩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홍콩을 ‘돈’으로만 보는 중국은 홍콩의 역할을 점차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외국인 투자도 홍콩을 거치지 않고 중국이 직접 나서고 있다. 금융 허브 역할도 상하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홍콩을 광둥성의 일부로 편입하고자 하는 것이 중국 정부가 원하는 방향인 것이다.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의 홍콩화’와 ‘홍콩의 중국화‘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전자는 경제적으로 선진화된 홍콩이 중국 전체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후자는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홍콩이 중국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홍콩의 중국화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에 불안한 홍콩인들의 민주화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홍콩인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중국 정부가 바라보는 홍콩의 가치 사이에는 양립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홍콩의 민주화 요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 정부의 대응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홍콩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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