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막기 위한 방벽 설치 공사비 20억 유로 횡령
국제사회에 손 벌리기 앞서 고질적 부패 근절해야

최근 이탈리아 북부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가 53년 만에 닥친 최악의 수해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소실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하면서 이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일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수해로 피해를 본 문화재급 건물만 산마르코대성당을 비롯해 5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는 손상된 유산을 복구하려면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기부까지 호소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까지 나서 유산 복구를 도와달라고 하니 사태가 심각한 것 같긴 한데, 과연 이탈리아 정부는 수해 대비에 최선을 다했을까 하는 의문에 생긴다. 수해를 막으려는 노력보다 부패의 흔적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베네치아는 탄생할 때부터 물에 취약했다. 얕은 바닷물에 잠긴 석호의 진흙 바닥에 잘 썩지 않는 오리나무 기둥을 박아 넣고 그 위에 석회암 판들을 덮는 식의 간척 사업을 통해 만든 도시이기 때문이다. 겉에서 보면 하나의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그 시초는 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학자들은 서로마제국이 쇠망할 즈음 몰려온 훈족들을 피해 바다로 밀려온 일부 로마인들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석호를 발견하고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본다. 지금도 베네치아의 원도심은 육지로부터 약 3.7㎞나 떨어져 있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도시의 기반이 무른 진흙에 박은 나무 기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도시 자체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따라서 수해는 옛날부터 인지되어 왔던 문제였고, 만조 때마다 도시의 일부분이 조금씩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물을 막기 위한 방책도 다양했다. 600년 전에는 석호 내부로 밀려들어오는 주요 강줄기들을 모두 막아버렸고, 17세기 들어서는 홍수로 인한 재해 복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특별 세금을 걷기도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침하가 더욱 심각해졌다. 연구에 따르면 베네치아는 1년에 2~3㎜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기후변화가 베네치아 홍수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애초 개펄과 석호 위에 거주지가 형성된 베네치아는 물에 취약한 구조인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접한 아드리아 해의 강우와 강풍 현상이 자주 발생하면서 해수면을 끌어 올렸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대책도 더욱 강화됐다. 지난 2003년 5월, 당시 이탈리아 총리 실비아 베를루스코니는 석호의 입구에 물을 막는 방파제를 설치하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이는 물이 과도하게 석호 내부로 밀려들어 올 것 같으면, 평소에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방파제 속에 가벼운 공기를 불어넣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함으로써 물의 유입을 막는 방법이다.

핵심은 침수 취약 지점에 최고 3m 높이의 방벽을 만들어 평소에는 물길을 막지 않다가 수위가 올라가면 압축공기로 벽을 밀어 올려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모세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문제는 대책의 실효성보다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였다.

모세 프로젝트는 예산확보 문제 등으로 공사 착공은 2003년에야 이뤄졌고, 2014년 공무원들의 뇌물비리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공사 착공도 늦어졌다. 무려 20억 유로의 금액이 빼돌려졌다고 한다. 그사이 공사비는 계속 불어나 원래 목표했던 16억 유로를 넘어 최대 60억 유로까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수해도 따지고 보면 대책이 없었던 게 아니라 부정부패로 인한 인재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베네치아의 침수 피해가 이처럼 부정부패 때문이라니 과연 이탈리아다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베네치아 살리기가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인류의 보물인 까닭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국제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벌린 것도 이 때문인데, 도움은 주되 부정부패를 막을 방법도 같이 논의하면 어떨까.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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