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으로 미국과 갈등 겪으며 존립 기반 위협
집단에서 독자 생존으로 바뀌어…자주국방이 최선의 길

“NATO는 미국을 끌어들이고, 러시아를 내쫓고, 독일을 억제하기 위해 설립됐다.”1949년 창설된 서유럽 국가들과 북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군사적, 정치적 공동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초대 사무총장인 영국의 이즈메이는 창설 초기 NATO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에 빠져 있던 유럽의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세계는 분할의 시대였다.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힘겨루기에 몰두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물론 독일도 분할됐고, 유럽 전역은 동서로 나뉘어 소련과 미국에 의지하며 서로를 위협했다.

NATO 창설의 발판이 된 첫 번째 위기는 1948년 6월 말 찾아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와 함께 2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을 분할 점령하고 있던 소련이 베를린 내의 서방 점령지를 봉쇄한 것이었다. 수도와 전기 공급을 차단하고 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도 폐쇄했다. 독일 전체를 소련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의도에서 취한 조치였다. 이에 서방은 항공기를 활용해 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하는 등 이를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했고, 결국 소련도 3달 만에 봉쇄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에 자극을 받은 서방국가들은 집단방위체제 구성을 위해 1949년 4월 집단 방위 조약을 체결키로 했다. 이를 통해 NATO가 창설됐다. 창설 멤버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이었다. 이들은 참가국 중 일부가 공격을 받으면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자주권 수호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한 것이었다.

이는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의 서진을 막고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장치였다. 또한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기도 했다.

이어 서방연합국은 독일 점령지를 하나로 통합해 독일연방공화국, 서독을 건국했다. 그런데 NATO 운영 과정에서 서독이 문제가 됐다. 미국은 유럽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통합돼야 소련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전선인 서독의 재무장이 필요했다. 결국 1950년 9월 NATO 내에 서독군을 창설한 데 이어 1955년 서독도 NATO에 가입시켰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을 받았던 소련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해 1955년 5월 동유럽의 군사공동체인 바르샤바조약기구 창설로 맞섰다. 바르샤바조약기구 창설은 서독의 NATO 가입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었던 셈이다.

유럽 동서 진영의 갈등은 소련이 해체된 뒤 동유럽 국가들이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해 NATO에 가입함으로써 점차 해소됐다. NATO 창설의 한 이유였던 독일에 대한 견제도 독일이 NATO의 충실한 멤버 역할을 하며 과거사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약화됐다. 회원국은 1952년 그리스와 터키를 시작으로 확장돼 지금은 29개국에 이른다.

이렇게 초대 사무총장 이즈메이가 지적했던 NATO 창설의 모든 이유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문제는 탄생한다. 마침 12월 3~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NATO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정상회의가 열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 사이의 협력, 미국제 전투기로 러시아제 미사일 성능 실험을 벌이는 터키의 예측 불가능성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집단 안보의 위험성이 부상하고 있다. 그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다. 이는 동맹국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갈등으로 ‘NATO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가능성도 피력한 바 있다.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재선이 나토에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고 두려워한다.

이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에 제공해온 안전 보장의 타당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나토의 집단 안보가 최상의 억지 수단으로 작동하려면 이게 실제로 작동하리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지만 집단 안보가 더는 기능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미국의 집단 안보에 기대 지금까지 왔다. 미국이 핵심 동맹체인 NATO와도 갈등을 겪고 있는데, 우리하고만 굳건한 동맹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은 이제 없는 것이다. 실제로 똑같이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갈등도 빚고 있다. 우리도 집단 안보의 위험성과 갈등에 직면해 있다.

바야흐로 집단 안보체제 없는 독자 생존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해결책은 자주국방의 역량을 키우는 것 말고는 없다. 집단 안보체제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지혜가 필요하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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