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연평균 교역량 21.6%씩 성장
생산기지가 아닌 공동 발전 국가로 인식해야

최근 들어 우리 주변국들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과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는 일제강점기 시절 징용 배상 문제로 시작된 경제 전쟁의 실마리를 좀처럼 풀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관계 역시 사드 갈등이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수출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 베트남과는 정치·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박항서 매직’으로 불리는 베트남 축구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덩달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K-POP 열풍과 함께 화장품 등 한국산 생필품이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다. 베트남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현지에서 환대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생방송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 다낭은 한국 청년들이 한번쯤은 여행하는 필수 관광지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우호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축구를 매개로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양국 간 교역은 사실 그 이전부터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대(對)베트남 교역량은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21.6%씩 성장했다. 지난해 교역규모는 683억달러며 올해는 10월까지 582억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량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0.6%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6.7%까지 늘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며, 2017년 이후 베트남은 한국의 3대 교역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한·베트남 경제 교류가 활발해 짐에 따라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활약도 눈에 띤다. 베트남에 가장 먼저 진출한 기업 중 하나인 삼성은 그동안 총 76억달러를 투자했다. 베트남 전체 수출 약 2400억 달러 중에서 삼성전자의 수출이 600억달러로,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삼성이 베트남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현대자동차도 베트남에 진출한지 9년 만에 도요타 등 일본자동차를 젖히고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베트남자동차공업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베트남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는 도요타(23.8%)였고 현대차는 점유율 19.4%로 2위를 차지했다. 기아차 점유율 10.5%와 합산하면 도요타의 시장 점유율을 이미 넘어섰다. 이 지역 자동차 시장의 강자인 일본차에 앞서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시장의 중요성은 우리나라의 3대 수출국이라는 교역규모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최대 수출국이자 투자국인 중국의 대안으로 충분한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데 있다. 특히 베트남은 그동안 이룩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외교적인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코트라 하노이무역관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0 베트남 주요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베트남은 아세안(ASEAN) 의장국(2020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2020-2021년), 아시아태평양 평화유지 활동 센터(AAPTC)의 의장국(2020년) 등 국제정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외시장 다변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올해 들어 글로벌 통상 환경의 악화로 한·아세안 교역이 다소 주춤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이 지역은 미래의 시장으로 반드시 잡아야 할 지역이다. 이러한 때 우리나라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이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인 분야에서도 아세안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고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치오 모리시마(MIchio Morishia) 런던 정경대 명예교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유교(儒敎)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가설에 반해 20세기 초 일본의 빠른 경제 성장을 예로 들면서 유교 사회의 전통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유교적인 전통이 가장 강한 한국과 베트남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향후 베트남 경제가 우리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오히려 앞서 나갈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베트남을 주요 수출 시장 혹은 제조업 생산기지 수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국가라는 차원에서 공동으로 발전해 나가는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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