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35조원 투자 불투명...투자 환경 개선 필요

정부는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투자와 소비 촉진’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눈에 띤다. 정책 기조가 분배에서 성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2019년 정책 목표가 소득주도성장과 양극화 해소,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 등 사회적 자원의 분배에 초점이 맞추어 졌던 반면, 내년에는 투자와 소비 촉진, 수출 활성화를 통해 경기 반등과 성장잠재력을 제고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사람중심 경제라는 용어는 아예 빠져버렸다.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바뀌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대내외 환경이 악화되면서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 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계경제는 글로벌 동반 둔화(Synchronized Slowdown) 양상을 띠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협상기대와 갈등이 반복되는 등 불확실성을 제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업황은 회복이 더디기만 하다. 내부적으로도 생산인구 감소, 온라인 판매 증가, 기술 진보 등 구조적인 전환이 가속화 되면서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하는 민생 경제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는 금년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2.6~2.7%로 제시했지만 현재 2.0% 달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성장률이 2.0% 아래로 떨어진 경우가 1998년 외환위기(-5.5%)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7%)를 제외하고는 없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또한 작년 12월 이후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정부는 2020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과제로 1+4(경제 상황 돌파 + 4대 정책 방안) 전략을 발표했다. 먼저 경제 상황 돌파 방안으로 투자 활성화, 국내 소비·관광 중심의 내수 진작, 건설 투자 확대, 수출 회복 지원 및 적극적 대외 진출, 지역 경제 활력 제고 등을 추진한다. 그리고 4대 정책 방안으로 혁신 동력 강화, 경제 체질 개선, 포용 기반 확충, 미래 선제 대응 등 세부 방향을 설정했다.

여기서 핵심은 제 1 과제에 해당하는 ‘경제 상황 돌파’다. 사실 4대 정책 방안은 이전에도 여러 번 나왔던 개념들을 재구성해서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반면 경제 상황 돌파는 하방 리스크에 직면한 국면을 반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후 가진 합동브리핑에서 “내년에는 반드시 경기반등의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며 “2020년에는 ‘나아졌다’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가득 찰 수 있는 해로 만들겠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가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정책 방향을 분배에서 성장 중심으로 선회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한 민간 기업을 포함해 투자를 활성화시켜 현재의 상황을 돌파해 나가겠다는 방향성도 잘 잡은 것 같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과 공공기관을 동원해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먼저 공공기관의 투자 60조원은 무난하게 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55조원의 공공자금이 투자된 것을 고려하면 5조원이 늘어난 것에 불과해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민자 사업 15조원 중에서 약 5조원은 이미 계획된 것이고 나머지 10조원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실제로 내년에 투자가 이루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 기업 투자 25조원이다. 10조원은 이미 계획된 것이고 나머지 15조원은 미정이다. 더욱이 계획된 10조원도 내년에 한꺼번에 투자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내년도 투자 계획을 내놓으라고 해서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기업은 규제 완화나 노동시장 유연성 등과 같은 투자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대규모 신규 투자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기업 투자는 언제든지 계획을 거두어들이거나 연기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민자 사업에서 투자가 불투명한 10조원과 민간기업 투자 25조원 등 35조원은 내년에 한 푼도 투자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 목표치를 잡아 내년에 실현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정부의 태도가 참으로 무책임하다. 구호만 요란할 뿐 알맹이가 없다.

정부가 내년에 투자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반등시키고 2.4%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100조원 투자가 온전히 이루어졌을 때를 가정해 나온 수치일 것이다. 반면 BOA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기관들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7~1.8%에 그칠 것이라 전망한다. 정부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면 100조원의 투자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조원의 투자가 계획대로 실행되고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세부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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