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일제 청산 등 실패로 우리 사회 적폐 뿌리 깊어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네이션 빌딩’ 필요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아 이를 건설한 주역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환되고 있다. 그의 공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돼왔다. 또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공과를 떠나 그가 진정으로 해야만 했던 일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제대로 하지 못했던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었다. 다시 말해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이후 이전의 왕조국가와 전혀 다른 근대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해야 했음에도 이에 실패한 이승만을 극복하는 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승만과 같이 독재를 활용한 부정적인 방식의 통치로 인해 그 또한 이승만처럼 네이션빌딩에 실패했다. 다른 게 있다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처럼 성장의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측면이지만 박정희의 방식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가 멘토로 삼고자 했던 인물 중에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있다. 박정희 통치 시절 케말 파샤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인물로, 아타튀르크라는 성(姓) 자체가 ‘터키인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아타튀르크는 제3세계에서 근대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네이션 빌딩의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서구의 많은 역사학자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박정희가 그를 따라 시행했던 것 중에는 농촌 계몽운동인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 허례허식 타파, 문자 개편 등 많은 것이 있다. 군인 출신이며 죽을 때까지 장기 독재를 했다는 점도 박정희와 비슷하다. 박정희는 아마도 이런 것들을 네이션 빌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타튀르크는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터키를 건국할 당시 터키인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동유럽의 여러 민족을 통치하던 오스만제국이라는 600여년 역사의 전제주의 국가를 주도해온 민족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함께 동맹국으로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패망한 오스만제국은 분할을 면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터키민족만의 국가인 터키를 건국했지만 과거의 구태를 청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두를 이끌고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닦는 네이션 빌딩이 쉽지 않았음을 전해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건국 초기 어느 날 그가 어린 수양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수양딸에게 “저기 오고 있는 친구를 한 번 봐. 쓰레기통을 비울 때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찌꺼기 같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수양딸이 “그런데 왜 저런 사람을 만나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이해 못할 거야”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구태에 젖은 인사들과도 만나면서 설득해야 했던 것을 드러내주는 일화이면서,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그리고 왜 존경받는지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아마도 겉으로 드러난 그의 정책을 따라하면서 그처럼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설득보다는 독재를 앞세우는 바람에 이승만을 넘어서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 실패는 신군부의 또 다른 독재 정권과 부패 정권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독재와 부패로 인해 아직까지 우리의 네이션 빌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전히 네이션 빌딩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쓰레기통에 묻어 떨어지지 않는 찌꺼기 같은’ 적폐들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이른바 ‘검언유착’ 파동에서 드러나는 검찰의 저항이나 기득권 언론의 왜곡 등이 적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네이션 빌딩만큼 적폐 청산도 어렵다는 말이다.

이들 또한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권력을 유지해온 집단이며, 그 권력을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특권을 버리지 않으려 함으로써 진정한 네이션 빌딩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민주국가로서 네이션 빌딩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이들의 반발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렸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경험이 적폐들의 반발을 물리칠 만큼 성장해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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