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물 백신 의혹' 속 개발 성공 발표
트럼프 대선 승리 위해 백신 개발 사활
정치적 득실보다 인류보건 기여가 더 중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근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밝힘에 따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이 본격적으로 개막될 전망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여러 나라들이 경쟁을 벌여 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공식 등록 선언을 계기로 더 효과적이고 더 저렴한 백신 개발 경쟁도 더불어 펼쳐질 것이다.

일단 러시아는 백신의 공식 등록 절차를 마침에 따라 조만간 양산과 일반인 접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타국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백신이 아직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아 그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백신은 모스크바의 세체노프 의대와 부르덴코 군사병원에서 각각 38명씩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한 1차 임상 시험이 지난달 중순 마무리됐고, 이후 2차 임상시험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상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공언만큼 완벽히 개발됐는지 불투명한 것이다.

어쨌든 러시아는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밝혔고 이에 따른 다른 나라들의 반응도 이해할 수는 있는데, 러시아가 백신에 붙인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지난 1957년 옛 소련이 인류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이름을 따 '스푸트니크 V'로 명명한 것이다. 인류 최초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는 점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이 과거 우주 개발 경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과거와 현재의 미국 대선이 오버랩된다. 과거 미국의 대선은 1960년에 치러진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의 대결이다.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당시의 이 대결에서 케네디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위기’, ‘소련과의 미사일 수준 차’ 등을 이슈화해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우주 개발과 미사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진 것을 공격해 정권을 빼앗은 것이다.

1957년은 냉전의 한 복판에 있던 시기였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이후 아이젠하워 정부는 국민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당연히 냉전이라는 대결 구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화당 정권은 그 다음해인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는 등 여러 대응책을 마련하고 혁신 사업을 펼쳤지만 1960년 대선에서 패배를 면치 못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정국에 또 다시 ‘스푸트니크 위기’라는 돌발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 백신에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을 붙인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미 백신 개발 경쟁에 뛰어들어 있는 미국의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말이다.

당시처럼 수세적 입장에 있는 건 집권 공화당이다. 잇단 말실수와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보다 완벽하고 강력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서두를 것이다. 트럼프가 광속을 넘는다는 뜻의 일명 '워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과 백신 물량 선주문에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라는 거액을 쏟아 부은 것도 신속 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세적 입장이다. 60년 전 민주당의 케네디가 ‘스푸트니크 위기’를 발판 삼아 정권을 빼앗았다면 이번에는 조 바이든이 그 일을 해줘야 한다. 바이든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발표한 날 흑인 여성 정치가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대유행에 잘못된 대처로 경제위기를 자초한 것은 물론, 인종 차별주의로 미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공세를 펼쳤다. 바이든이 제기한 이슈가 과거 케네디가 제기한 이슈만큼 대선 정국에서 효과를 발휘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코로나 정국에서 승리하는 자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점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진정성이다. 러시아에서는 과거 최초의 인공위성 성공과 같은 국위 선양이 목적일 수 있겠고, 미국에선 대선 승리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겠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기 위해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느냐는 말이다. 과거 우주 개발 경쟁이 국력 과시용이었다면 백신 개발 경쟁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진정성의 경쟁이다. 러시아나 미국뿐 아니라 백신 개발에 나선 모든 나라가 정치적인 유불리보다 인류의 보건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더 고민하는 경쟁을 기대한다. 그렇게 하면 정치적 승리도 따라올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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