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 관훈클럽이 발간하는 계간지 ‘관훈저널’ 2012년 여름호에 ‘중국어 표기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제목의 특집이 실렸습니다. 평소 나도 관심을 가져왔던 이 문제에 대해 3인의 논자들이 펼친 다양한 의견들은 각자의 관점이 같으냐 다르냐를 떠나 중국어 표기에 새로운 원칙을 세울 때라는 것으로 모아졌습니다.   

중국어 일본어의 우리말 발음과 표기의 복잡다단함은 세 나라가 한자문화권임에도 한자의 표기와 발음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北京의 우리말은 ‘북경’이나 현지음은 ‘베이징’이고, 일본에선 ‘ペキン(페킹)’입니다. 영어권에서는 ‘Beijing’ 하나로 통합니다.

일본에서 ‘페킹’인 것은 중국에서 東京이 ‘도쿄’가 아니라 중국식 발음인 ‘둥징’인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이 ‘도쿄’로 부르지 않는 한 일본도 ‘베이징’ 이전의 영어이름인 ‘페킹(Peking)’으로 부르겠다는 다분히 민족감정적인 대응입니다.

외국의 인명과 지명은 현지음 중시가 국제적 관례입니다. 한국은 그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나라입니다. 국제통용어인 영어로 ‘Beijing’이기 때문에 우리도 ‘베이징’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어는 한글보다 현지음을 홀대하는 언어입니다.

우리의 경우 학교에서 ‘北京’을 ‘북경’으로 가르치면서 언론에선 ‘베이징(北京)’으로 씁니다. 현지음과 한자만 있지 우리말 독음이 빠졌습니다. 그러니 한자를 북녘 '북‘ ‘베이’, 서울 ‘경’ ‘징’으로 한글 독음과 현지음 두 갈래로 가르쳐야 할 판입니다. 한글을 너무 힘들게 하는 일이죠. 그것이 중국말 표기 및 발음에서 모순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영어처럼 ‘북경’이고 ‘北京’이고 할 것 없이 ‘베이징’ 하나로만 쓰고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한글전용의 논지입니다. 그러나 ‘북경’ ‘北京’ 없이 ‘베이징’이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 한·漢 혼용론의 논지이고 나도 그런 생각입니다.

게다가 중국말의 경우 시대에 따라 우리말 발음을 달리해 한층 더 복잡합니다. 中國은 ‘중국’인데 北京은 ‘베이징’입니다. 삼국지의 劉備는 ‘유비’지만 중국 국가주석 胡錦濤는 ‘호금도’가 아니라 ‘후진타오’입니다.

차이를 가르는 기준은 1911년의 신해혁명입니다. 신해혁명 이전의 이름들은 한글 독음으로 하고, 이후는 현지음으로 한다는 게 우리의 외래어 표기원칙입니다. 신해혁명 전에 태어난 신해혁명의 주인공 손문(孫文)은 그래서 혁명 전은 ‘손문’이요, 혁명 후는 ‘쑨원’이죠.

그러나 이 원칙도 그냥 원칙일 뿐이죠. 요새 사람인 홍콩 배우 성룡(成龍)은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이름으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성룡’이 되고 ‘청룽’이 됩니다. 같은 천안문 광장에 있어도 天安門은 ‘텐안먼’이고, 紫禁城은 ‘자금성’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어문정책의 정체성 문제에 닿아 있습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초중고교에서 한자교육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다 92년부터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학교 재량으로 허용됐고, 2009년부터는 창의력 체험활동으로 정규과목에 편입됐습니다. 2005년부터 한문은 수능에서 선택과목이 됐습니다.

학교교육에 앞서 한자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폭증해 한자능력 검정시험과 한자학습지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중교류의 확대와 중국의 G2국가 등극으로 중국어 교육은 성인 대상으로도 성업 중입니다.

중국어 발음 및 표기가 한문을 배운 기성세대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미래세대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그 핵심은 우리말 독음과 현지음과 한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냐의 문제입니다. 기술적으로 말하면 3자를 어떤 순서로 배열하느냐의 문제고, 세 가지를 다 쓰기는 너무 복잡하므로 하나를 뺀다면 무엇을 빼는 것이 더 타당하냐의 문제입니다.

국내 언론의 중국 일본의 인명 지명 표기는 현지음 중시 원칙에 따라 ‘베이징(北京)’ ‘도쿄(東京)’식이고, 두 번째부터는 현지음만 적습니다. 일부 언론만이 중국 인명의 경우 처음 한 번 한자 다음에 한글 독음을 붙여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로 씁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참고할 상대가 북한입니다. 조·중 정상회담 때 참석자 앞에 놓인 명패를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호금도 앞에는 ‘호금도’라는 한글 명패가, 김정일 앞에는 ‘金正日’이라는 한자 명패였습니다. 상대방의 언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배려였겠죠. 한·중정상회담이라면 모두 한자 이름의 명패를 준비할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중국 인민일보 인터넷 판은 ‘후진타오’로 표기하는 한국어 판과, ‘호금도’로 표기하는 조선어 판이 따로 나옵니다. 중국의 두 개의 한국정책은 어문정책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셈이죠.

최근들어 북한도 종전의 ‘북경’ 대신 ‘베이징’으로 부르는 등 현지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중국의 영빈관 ‘조어대(釣魚臺)’를 ‘낚시터 국빈관’이라고 우리말 풀이 식으로 표기했다고 하는데 억지스럽긴 하나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주목됩니다.

관훈저널 논자 중에는 중국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 수도 연길(延吉)역에 내리면 “여기는 연길입니다”라고 우리말 방송이 나오는데 한국의 언론들은 '연길'을 ‘옌지’라고 쓰고 있다며 연변의 지명만이라도 예외로 우리 방식대로 쓰도록 특별법을 만들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SBS의 박상도 아나운서는 자유칼럼의 글을 통해 중국어 발음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가운데 일·중간 영토분쟁지역인 조어도(釣魚島)를 ‘조어도’라고 하면 될 것을, ‘댜오이다오’라고 하면 중국편을 드는 것 같고, ‘센가쿠(尖閣)열도’라고 하면 일본 편을 드는 것처럼 되어 외교적으로 난처한 입장을 자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죠.

그러면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훈독(訓讀)이 많은 일본 이름의 경우 현지음과 우리말 독음이 현저하게 다르고, 음절 수도 현지음이 배 이상 긴 경우가 허다합니다.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인 것이 한 예죠. 현지음과 한문, 우리말 독음을 다 쓰려면 가운데 점과 괄호를 포함해 19자가 소요됩니다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의 인명 지명에서 한글독음을 빼고 쓰는 것은 그런 번삽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독음과 현지음 간의 현저한 차이로 인해 ‘풍신수길’만 쓰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알 수 없게 된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입니다.

현지음을 감안하되 자국민의 언어관행과 편의를 더 존중하는 외국어 표기 및 발음의 대표적인 예가 영어죠. 유럽대륙의 지명 중에서 현지음과 영어의 발음이 같은 곳은 거의 없습니다. 현지음 에스파냐(Espaa)는 영어로 스페인(Spain)이고, 이탈리아(Italia)-이태리(Italy), 로마(Roma)-롬(Rome), 쾰른(Kln)-컬로운(Cologne), 빠리(Paris)-패리스(Paris), 모스크바(Moskva)-모스코우(Moscow)등이 그렇습니다.

버마(Burma)를 미얀마(Myanmar)로 불러달라는 미얀마 정부의 20년이 넘은 요청을 미국이 수락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죠. 구 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아는 여전히 미국의 주 이름과 같은 ‘조지아(Georgia)’이구요.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나라의 언어로 외국의 인명과 지명을 완벽하게 발음하기는 어렵다는 것, 정확하게 발음하려 할수록 더 난삽해 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 어느 나라든 현지음 보다는 자국민의 언어관행과 편의를 중시한다는 것 등입니다.

여기에 한자 병기문제까지 달려 우리의 언어 관행에 많은 혼란을 안겨주는 중국어 표기에 대해 새로운 원칙을 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러려면 중국의 毛澤東 주석을 ‘모택동’으로 부를 거냐, ‘마오쩌둥’으로 부를 거냐부터 정해야 합니다. ‘마오쩌둥’도 중국내 지역에 따라 마오저둥, 마오제동, 마오쩨뚱 마오쩌똥 등 제각각이라고 하죠.

이처럼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현지음에다 우리의 한자교육과 연계성이 없이 한자를 괄호 안에 넣는 ‘마오쩌둥(毛澤東)’보다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으로 우리말 독음을 앞세우고 한자와 현지음을 병기하는 방식이 어문정책에 부응하며 혼란도 줄이는 방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원래 한자의 우리말 발음에는 한글창제 당시부터 현지음의 요소가 상당 부분 반영돼 유사한 편이고, 음절 수도 비슷해 두 언어 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최소한 영어와 유럽 지명 간의 관계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게다가 처음 한 번은 현지음을 병기하므로 현지음 중시 원칙도 지킬 수 있습니다. 어문 당국은 현지음 우선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우리식 발음 및 표기 원칙을 새로이 할 때 입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