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지만 나는 미국식 ‘權不十年’ 정신의 결과라고 봅니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4년 임기에 1회 연임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수행을 구실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4연임을 했다가 임기 중 병사한 경우가 한 번 있었을 뿐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면 대통령이 재임 중 웬만큼 큰 실정을 하지 않는 한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연임 대통령의 후임으로 더러 같은 당 후보가 선출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대통령은 거의가 단임으로 끝났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정당 피로(Party Fatigue)’현상입니다.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같은 정당이 10년 이상 집권하는 것에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2차 대전이후 단임으로 물러난 미국 대통령은 린든 존슨(민주), 제럴드 포드(공화), 지미 카터(민주), 아버지 조지 부시(공화) 대통령 등입니다.

이중 존슨은 월남전, 포드는 닉슨 대통령 탄핵, 카터 대통령은 이란 주재 대사관 인질구출 실패라는 악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연임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이어받은 같은 당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한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최대의 이슈도 경제난이었습니다.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제난의 책임은 전임 부시 대통령에게도 있다’는 사람이 40%나 됐습니다. 유권자의 70% 이상이 ‘미국 경제가 나쁘거나 좋지 않다’고 했지만 ‘앞으로 나빠질 것’(30%)이라는 사람보다는 ‘나아질 것’(40%)이라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뉴욕타임즈는 분석했습니다.

그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고 오히려 흑인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연임한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백인들이 노예로 부리던 흑인 출신이 백인사회 절대 다수의 반대를 뚫고 이룬 승리라는 데 인류사적 의미가 자못 큽니다.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늘상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성화하면 자기의 탓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극단적인 몰염치로 발전합니다. 롬니도 그것으로 실패했다지만 그런 형태의 네거티브는 한국의 선거에서 특히 기승을 부려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내심으로 바랐고 또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미 양국은 반세기 넘는 동맹관계 속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오바마 행정부 4년의 한미관계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우호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이전의 역대 백인 대통령들도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발전을 예찬했으나 그들은 한국의 성공을 미국의 대외정책의 성공사례로 과시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 듯했습니다. 허나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예찬은 그런 대통령들과는 어조부터 달랐습니다.

그는 2007년 대선유세 때부터 미국 유권자들을 향해 “한국에서 배우자”고 외쳤습니다. 4년 임기 내내 그 외침은 지속됐고, 지난 재선 캠페인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든 그는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특히 그의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칭송은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가 교육제도에서 연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2011년 의회 국정연설에선 한국 예찬이 5번이나 들어 있었고, 올해 광복절 때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한국은 역동적 민주주의의 모범사례이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발전과 번영을 경험한 롤 모델”이라고 격찬했습니다. “싸이의 말춤 동작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한국에 관한 관심은 넓고 깊습니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는 전방위 한국 팬 수준입니다.

그는 지난 3월 서울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 때 한국을 세 번째 방문했습니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고, 그 전에는 취임 후 아시아 순방길에 들렀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방한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임기 중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미국 대통령이 한 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지만 임기 중 세 번 방한은 그가 처음입니다.

그는 세 번째 방한 때 한국외대에서 특별 강연을 하면서 “재임 중 한 나라의 수도를 세 번이나 방문하기는 서울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도 처음이었고, 그에게도 처음이었던 겁니다.

서울서 열린 두 차례 국제회의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데, 두 회의의 한국 유치 성사에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방한은 행동으로 표시된 한국예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런 관심이 세계은행에 한국계의 김용 총재를 추천했고, 주한미국대사로 한국계 2세 성김 씨를 임명했을 것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나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농을 걸게 했을 것입니다.

또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맹방으로서 안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한미 미사일 협상 때 미 국방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요구한 사거리 800km를 들어주라고 했을 것이며, 2008년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를 통해 재정적 지원을 제공토록 했을 것입니다.

그의 한국 예찬은 생래적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인 아프리카 케냐와 의붓아버지의 나라로 어린 시절에 살았던 인도네시아는 2차 세계대전 종료 때만 해도 한국보다 부자나라였으나 지금 한국은 이들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아마도 그는 한국의 성취에서 자신의 성취를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어조에 내재된 진정성도 거기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그런 오마바 대통령의 재선은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믿음직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2기는 재정 절벽(Fiancial Cliff)과, 중심축을 아시아로 돌리는(Pivot to Asia)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으로 1기 때보다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때마침 습근평(習近平·시진핑) 주석으로 교체된 중국의 새 지도부와 격렬한 힘겨루기도 예상됩니다.

미중 두 강국과 안보, 경제면에서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의 입지가 매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12월의 대선은 이 숙제를 가장 잘 풀어 낼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절차인데 온통 야당 후보 단일화와 과거사를 둘러싼 네거티브에 함몰돼 있습니다.

나는 18대 대선이 한국의 정치에서 '權不十年'이냐 '權不五年'이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 관용과 조급의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을 뽑아 놓고 후회하기가 몇 번 째인지 모릅니다. 사회가 갈수록 희망을 잃고, 조급해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1년도 안돼 찍은 사람들부터 후회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웬만한 잘못에 대해서는 관용하며 한 번 정도는 더 기회를 주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그것이 미국 대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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