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김용준 총리 지명자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재산 형성과정에 국민적 의혹이 커지자 자진 사퇴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 지명자가 청문회도 못 치르고 중도 퇴진한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잘못 뀌어진 첫 단추를 이내 바로잡은 점에선 그나마 다행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정책에 엄중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약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김용준 지명자가 가정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1980년대 중반 나는 법원 출입 기자였습니다. 그 때 이미 그는 부자 판사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동대문 시장인가에서 큰 포목상을 경영하는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총리로 지명된 후 그와 그의 아들들의 재산이 문제가 됐을 때 나는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잘 관리했겠거니 했습니다. 예닐곱 살 된 아들들에게 땅을 사 준 것도 할머니였다고 했을 때, 요즘은 호적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손자들에게 수십억원 어치의 주식을 선물로 주는 세상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억지로라도 이해하려했습니다. “그런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과자를 사주지 땅을 사주는 게 아니다.”는 얘기가 통렬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나에게 그럴 재력이 있다면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이 체중미달과 통풍으로 병역을 면제 받은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두 아들의 병역문제로 청와대 문턱에서 두 번이나 낙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은 비슷한 연세에다 대쪽과 원칙의 화신으로 명성이 자자한 판사였고, 명가 출신에 명문 여대를 나온 부인을 두었는데, 두 아들이 모두 비슷한 사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까지 같다는 것이 너무나도 공교롭게 여겨졌습니다. '김대업'이 다시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이회창 씨의 낙마가 보여준 것은 재산 보다 병역문제에 내재된 폭발력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유행어 ‘세대별 잘난 남자’ 가운데 ‘10대는 부자 부모를 둔 남자’라고 하듯이 재산은 대개 부모의 덕과 자기의 노력으로 축적됩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많아야 공정한 사회라고 하겠는데 우리 사회는 거꾸로 세습에 의한 부의 축적이 고착화하는 양상이긴 합니다.

병역면제에 우리 사회가 민감한 것은 공평하게 져야 할 의무를 불공정한 방법으로 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병역을 면제 시키는 행위는 선량한 시민들에 대한 가진 사람들의 파렴치 행위이기 때문에 더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병역문제의 민감성을 생각했다면 김용준 씨를 지명하면서 면제의 적법성에 앞서 국민적 의혹의 소지부터 따졌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의 실패원인으로 ‘고소영’을 꼽지만 군 경력이 없는 대통령이 병역면제자들을 총리를 비롯한 고위직으로 발탁한 점도 꼽힌다고 봅니다. 한 때 안보라인에 국방장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군 면제라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지난 번 대선에서 야당은 박근혜 후보의 군 경력이 없는 점을 약점으로 잡아 공격했습니다. 김용준 지명자가 총리가 되었다면, 비록 면제에 의혹은 없어도 대통령과 총리가 현 정부에서처럼 군 경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총리의 두 아들이 의혹의 소지가 있건 없건 병역면제자라는 사실만으로 많은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상황에서 먼저 휴전선 상황을 물었다는 것은 박 당선인의 안보관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그런 이미지에도 큰 손상이 갔을 것입니다.

고위직 인선에서 늘상 문제되는 것이 병역과 자녀학교 또는 부동산투기 목적의 위장전입 문제였는데 이동흡 헌재소장 청문회에서 업무추진비 문제가 또 하나 더해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다질 일이 하나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식 인사에 소통과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도 고쳐져야겠지만 다른 것은 덜 따지더라도 병역에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는 인사는 고위직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신성한 병역의무를 다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상처받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국민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겁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인 영국의 왕실에는 ‘전시든 평시든 왕자 가운데 한 명 이상 현역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그 원칙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엊그제 해리 왕자가 두 번째 아프간에 파견돼 공격헬기 조종사로 복무하는 모습을 영국 TV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저자소개>
임종건 :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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