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공연장을 찾을 때면, 답답한 마스크를 굳건히 쓰고 몇시간 동안 입도 뻥끗 못하고 물 한모금 못 마시면서도 객석을 지키러 온 사람들 모습에 생각나는 연극 한편이 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공연’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웃프게 던졌던 연극 ‘웃음의 대학’이다. 일본 최고의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으로, 영화와 라디오드라마로도 제작됐고,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야기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려는 극작가와 엄혹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웃음 따위 필요없다
서울 삼청동 초입의 삼거리에 자리한 바라캇 서울(Barakat Seoul)은 기묘한 시공간이 펼쳐지는 독특한 공간이다. 수 천 년을 오가는 동서고금 문화 예술의 정수가 모여있는,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한나라 시대의 형상 요전수좌와 당나라 시대 쌍봉낙타 도용이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은화 목걸이, 제우스의 청동 조각상, 알함브라의 접이식 의자, 보헤미아의 금장식 유리병이 관람객을 유혹한다. 모두 눈 밝은 소장자의 무수한 손때가 켜켜이 묻어있는 작품들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
‘삼겹살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삼겹살 맛집을 찾기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약수역과 청구역 사이에 있는 ‘금돼지식당’은 한 번 다녀간 손님이라면 무조건 ‘엄지 척’ 다시 찾게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좀 덜하지만 2016년 4월 문을 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선다. 예약도 안 된다. 문 앞에 걸린 종이에 이름을 써놓고 기다려야하는데 그 시간이 평균 30분 이상이다.금돼지식당을 유명하게 만든 데는 믿을만한 인플루언서의 역할도 크다. 대표적인 인플루언서가 바로 정
'386 세대는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여러 차례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인 결과 한국 사회 권력 구조의 정점에 올랐지만 이후 불평등 구조는 오히려 심화됐다.'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가 2019년 책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에서 펼쳤던 파격적 주장이다. 이 교수의 새 책 '쌀, 재난, 국가'는 '불평등의…'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책의 주제에 있어서나(역시 불평등 문제를 다뤘다), 내용에 있어서나 겹치는 대목이 많다. (새 책의 핵심 논의가 전작, 그러니까 '불평등의…'에서 짧게 소개했던 내용이다)인상
“백성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하리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하여라~”뮤지컬 ‘명성황후’의 엔딩곡이다. 시해당한 국모의 선창으로 조상의 영혼들이 비장하게 부르짖는 군가풍 합창곡에 때아닌 애국심이 불끈 솟아난다. 올해 2월은 이 ‘국모’의 두 얼굴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서두의 감동적인 엔딩곡에 빛나는 ‘명성황후’(2월 2일~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5주년 기념 공연과 영화관에서 만나는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잃어버린 얼굴 1895’(2월 24일부터 CGV 전국 40개관)이다.먼저 사
장욱진(1917~1990)의 그림은 따뜻하다. 그림의 중심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회한이 배어있어서 일 것이다. 누렁소는 물론 허공을 맴도는 동네 까치 한 마리에게도 그는 가족의 사랑을 준다. 하여 그의 캔버스 안에서는 모두가 한 가족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 일은 언제나 내가 해야 한다. 가족이라도 누가 옆에서 거들어 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그러나 나는 또한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1987,
서울 북창동에 위치한 ‘애성회관’은 1998년 문을 열었다. 23년째 한 자리를 지켜왔지만 워낙에 유서 깊은 노포가 밀집한 지역인 데다 ‘회관’이라는 애매모호한 상호명 때문에 ‘콕’ 집어 찾기 전에는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맛을 들이면 두 번 세 번 찾게 되는 집이다.메뉴는 단출하다. 식사류는 딱 2개. 파주장단콩으로 만드는 고소한 콩국수와 뜨끈한 한우곰탕이다. 요리로 먹기 좋은 안주류 역시 한우수육, 한우불고기, 한우와 낙지, 낙지볶음 4가지뿐이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 여러 명이 식당에 들렀다면 안주류에서 1개를
도시의 깊이부동산은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꿈과 추억을 가꿔가는 삶의 공간으로 접근할 때 집이 된다. 집이 삶의 공간이라면 건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집의 확장판이 건축인 걸까? 신간 '도시의 깊이'에서 건축은 집을 짓는 행위 자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공간' 없이는 혼자 존재할 수 없는 불완전한 용어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의 꾸밈말 같다. 건축 공간. 혹은 공간 건축. 이런 식으로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개성 있는 건축 공간들은 모여서 도시를 만든다. 그런 공간이 많아질수록 도시는 깊이를 확보하는 거라고 저
회계 문외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회계입문서가 화제다.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집필한 '회계! 내가 좀 알려줘?'가 그 주인공. 이 책은 사회 초년생인 현주가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사례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동호회에서 라켓을 구입해 판매하는 과정에서부터 중소기업을 인수해 경영하는 상황까지 실생활 곳곳에서 발생하는 회계처리 방법과 원리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이 책에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금융자산, 부채, 손익 등 다양한 회계용어와 원리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는데, 모두 위성백 사장이 직접 그렸다. 그가 직접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가 모두 참여한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이 베일을 벗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1923~2017)을 소재삼아 지난해 12월부터 장기공연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로 개막이 연기, 20일부터 24일까지 단 5일간 ‘두칸 띄어앉기’로 공개됐다. 2011년 국가브랜드 공연 ‘화선 김홍도’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합동공연으로, 그간 국립극장의 송구영신 레퍼토리였던 마당놀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획이라 주목됐다.‘명색이 아프레걸’은 ‘우루왕’(2000)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지 콘도(George Condo·64)는 요즘 가장 핫한 작가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어린 시절엔 음악에 관심이 많아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미술사는 물론 철학과 인문학에도 소양이 깊다. 앤디 워홀의 뉴욕 스튜디오(The Factory)에서 일하면서 키스 해링이나 바스키아와도 친분을 쌓았다. 콘도는 1980년대를 풍미한 팝아트 물결에 편승하지 않고, 83년 유럽으로 건너가 많은 현지 예술가 및 철학자들과 교류한다. 그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계승한 ‘신 입체파’로 불린다. 이에 대해 본인은 ‘심
겨울의 중심에서 북극 한파가 몰아칠 때는 고춧가루 팍팍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김치찌개가 제격이다. 숟가락으로 국물 한 입 털어 넣고, 흐물흐물해진 묵은 김치 한 줄기에 통통한 돼지고기 목살 한 점을 말아 꼭꼭 씹어 먹을 때의 느낌이란! 이 맛있게 매운 쾌감은 전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한국인 고유의 희열이라 자신할 수 있다. 덕분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 중에는 이름난 김치찌개 집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하는 서울 서소문 ‘장호왕곱창’은 1980년 문을 연 이래 41년간 넥타이 부대의의 사랑을 받아온 집이다. 소 곱
우리가 날씨다(We Are the Weather)미국의 재기 넘치는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44)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쟁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 실존을 뒤흔드는 위기,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이지만 그 심각성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사태 해결에 온전히 몰두하기 어렵다는 뜻에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실제로 그렇지 않나.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회의론자는 일단 제쳐 두자. 자명한 사실로 믿는 기후변화론자라 하더라도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포어에 따르면 이는 인식과 느낌의 간극, 또 우리의 상상력이 피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 대작 뮤지컬 ‘고스트’가 7년 만에 돌아왔다.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탄생한 뮤지컬 ‘고스트’는 죽음을 초월한 두 남녀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마술과 영상을 활용한 최첨단 무대에서 아름답게 구현해냈다. 국내에서도 2013년 초연 당시 7개월간 23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지만, 재공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린 건 최신 극장 시스템 없이는 설치 불가능한 대형 메커니즘에 1,200석 이상의 극장에서 5개월 이상 공연되어야 하는 매머드급 규모의 공연이기 때문이다.제작사 신시컴퍼니가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가 '농산촌 유토피아를 아시나요'를 출간했다.현의송 대표는 농협중앙회 임원, 농민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해왔다.현 대표는 그동안 자연과 인간이 친화적 관계를 만들어, 인간이 안식을 얻고 문명의 폐해를 멀리할 수 있는 곳으로 농산촌유토피아를 제시하며 이를 찾기 위한 관찰과 여정을 40여 편의 칼럼에 소개한 뒤 이를 묶어 책으로 엮었다.책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지구촌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현실을 지적하며 시작된다. 과학자들이 꼽는 코로나19의
통일 이후 독일 곳곳에서는 새로운 에너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는 ‘신 라이프치히 화파(New Leipzig School)’가 대표적이다.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의 아르노 링크(Arno Rink)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인의 고독한 감성을 화폭에 표현하는 일군의 구상주의 작가들을 말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작가 팀 아이텔(Tim Eitel·50)은 이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선두 주자다. 링크 교수의 수제자로, 2002년 동료 작가들과 함께 갤러리 리가(Galerie LIGA)를 공동 설립해 자신의 존재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