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방금 끓여서 내놓은 대형 철 냄비에서 하얀 우동발이 둥 둥 떠 있다. 냄비속이 조용해지다가 다시 끓으면 마치 곡예를 하듯 면발이 빙빙 돈다.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가면 후나사키(船崎)항에 도착한다. 일본 우동역사의 출발지이다. 바다를 건너 중국에서 온 사신에 의해 고도손노배(五島手延.손으로 면발을 만든)우동을 만든 방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중국의 사신이 출발한 절강(浙江)성에도 일본고도운동 같은 우동제조법이 있다.

나가사키현 고도(五島)열도는 일본에서 기독교 신앙이 제일 먼저 들어온 곳이다. 고도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1566년이다. 그 후 에도막부는 기독교금지령을 발포했고 오오무라(大村)번과 전국에서 이주한 신자들은 숨어서 신앙을 지켜야 했다. 섬을 걸어 다니다 보면 마음이 평안히 진정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명치시대 부터 소화(昭和)시대 까지 건축된 29개의 교회가 드믄드믄 있고 주민 모두가 기독교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항구에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와 작은 어항을 걸어보면서 리아스식 해안에 둘러싸인 섬주민의 생활상도 조금씩 보인다.

일본의 3대 우동은 아키다(秋田)현의 이나니와(稻庭) 우동, 카가와(香川)현의 사누키(讃岐)우동, 그리고 이곳 고도우동이다. 고도우동국물은 이 지역 특산물인 날치를 건조해서 사용한다. 섬내에서 잡은 날치는 이 섬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다. 잡은 날치를 바로 냉동 보존했다가 이를 꺼내서 1700도 온도로 구어서 5일간 건조해서 다시용으로 사용한다. 추석 후 북동풍이 불면 아리스가와 만에 날치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1년에 250톤 정도 잡는다.

고도우동은 면발이 가늘고 탄력성이 뛰어나면서도 잡아당기는 끈기가 강하다. 입술을 부드럽게 적시는 감촉은 서쪽의 조그만 섬의 우동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칠맛이 우수하다..섬 내에는 자생하는 야생동백 숲이 우거져 있다. 동백 씨로 만든 동백기름은 불사초로 인정되어 중국의 사신들에 의해 진상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백 씨를 건조 분쇄해서 뽑아낸 액을 가마에 끓여서 제유한다. 이는 보습제와 정발료로 이용되는 만능의 기름이다. 이 동백기름은 밀가루 반죽해서 얇고 길게 면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면발이 서로 접착하지 않도록 하는 윤활유의 일종이다.

일본의 우동 역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본래 우동의 제면 법은 당나라 사신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졌다. 당나라 사신이 상륙한 곳이 바로 고도의 후나사키(船崎) 항 이라고 전해진다. 인구 200명의 섬에서 전에는 주민 대부분이 우동을 만들어 판다. 같은 밀가루라도 날씨에 따라 면발이 딱딱하게 된 때도 있어서 수시로 면발의 상태를 보고, 공정 중에 세밀한 부분은 조정해 가면서 최상의 면발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동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도 한다. 시간 날씨 동백기름의 가감 정도에 따라 우동발 내부의 탄력성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조대에 거는 방법에 차이가 나면 면의 두께가 차이가 나서 끊어지기 쉽다. 하나하나의 공정을 정밀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맛의 차이가 나니까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도 우동의 가장 어려운 것은 건조방법이 고르지 못하면 면발의 두께가 차이가 나서 끊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하나하나의 모든 공정을 정밀하게 하지 않으면 맛이 달라지니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고도우동 면발제조법의 어려움이다.

고도 우동의 가장 중요한 것은 건조단계에 있다. 숙성과정을 끝낸 가늘고 긴 면을 사람 키 이상 높이의 건조대에 걸어서 건조시키는 과정인데 결국은 시간 승부인 셈이다. 동트기 전부터 생면 제조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이 건조대에 오전 중 걸어서 가급적 빠른 시간에 건조작업을 끝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제히 건조대에 가늘고 긴 면이 겹겹이 걸려있는 모습은 선녀의 치마폭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면발 스스로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뻗어서 하루 밤을 지내면 완성된다. 그날그날의 창문의 창을 여는 정도 ,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가면서 건조시킨다. 바람을 알아야 하고 그날의 날씨를 알아야 최상의 면을 생산할 수 있다.

가늘고 쫄깃한 ,입에 가득찬 부드러운 감촉, 독특한 식감의 고도우동은 한 번 먹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임팩트가 된다고 전해진다. 1990년 모 TV방송에서 고도우동이 소개 되면서 전국 최고의 우동으로 알려지고 점점 생산량이 늘어 년 간 매출액이 10억 엔(약100억 원)이 넘는다.

고도 우동의 맛을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36개의 제면소가 고도손우동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연구하고 품질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오오다제면소는 120년 전 창업해서 현재 30대의 오오다(太田充昭)씨가 4대째 가업을 지키고 있다. 섬사람들은 배위에서 그리고 밭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단란하게 생활하고 있다.

고도 우동을 먹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6.25전쟁 전 제주도 출신이 일본으로 밀항을 하다가 붙잡혀서 나가사키현 오오무라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 탈출해서 수영으로 고도의 항구에 도착해 불켜진 집에 들어간 곳이 기독교신자의 집이었다. 주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오사카까지 가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사위 나카다데쓰죠(中田哲三)씨가 소설로 쓴 책 실향민(失鄕民)이라는 책 내용이다.

매일 같은 우동을 먹는다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면 만들기가 매우 흥미롭다는 이야기다. 고도 지역의 날씨와 환경이 아니면 지금의 고도우동의 맛은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고도우동만의 특징이고 자랑이다. 한 사발 가득한 고도우동의 맛 속에는 고도만의 바람, 구름, 비, 태양이 들어있다고 자랑한다.

고도우동은 고도의 보물인 셈이다. 고도우동이 있는 한 고도 섬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섬 문화와 자연과 식문화를 지키는 것이 고도섬사람들의 천직의식이며 직업관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