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2년 전 일본 시고쿠(四國) 아와에서 열린 세계농업유산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의 가미야마(神山)읍을 방문한 적이 있다. 도쿠시마(德島)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가다가 긴 터널을 지나면 가미야마읍에 도착한다. 해발 1000미터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 소도시는 면적의 83%가 임야다. 1955년에는 인접 5개 읍을 합쳐서 2만명이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5000명으로 줄었다. 일본에서 소멸가능성이 20번째로 높은 지역이다.

이 마을에서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오오미나미신야(大南信也)를 만났다, 오오미나미는 동경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실리콘벨리에 있는 스텐포드대학에서 공부한 물리학자이다. 그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고향에 돌아와 소멸위기에 놓인 고향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 온 오오미나미는 우선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과 함께 초등학교 폐교부지에 사무소를 열었다. 사무실 이름은 그린밸리(green valley) NPO다. 회원은 55명, 직원은 6명이다. 그린밸리는 미국의 실리콘벨리가 IT산업의 발상지가 된 것처럼 무언가 탄생시키는 창조적인 마을로 만들고자하는 생각에서다. 이 마을에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은 없지만 늘 푸른 숲 즉 그린은 많이 있으니 그린벨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첫 번째 작업은 소멸되어 가는 고향마을에 세계예술가촌을 만들기로 했다. 예술가를 초청해서 일정기간 이 지역에 살면서 미술 등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초년도에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온 예술가 3명이 3개월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지만 2015년에는 이 곳에서 거주하는 예술가들이 141명으로 늘었다. 외국에서 온 예술가들은 호화로운 시설이 있는 도시지역보다는 농촌에서 소박한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작품을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마을에 초청받은 예술가들은 지역의 초중학교에서 학생들 상대로 수업도 진행했다. 산촌마을의 주민들이 예술인들이라는 전혀 다른 이방인들과 교류하면서 산골마을은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갔다.

다음 단계는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고향 이탈을 막고 역으로 사람들을 데려오자는 것이었다. 이주자를 역 지명하는 발상이다. 우선 영입 대상은 손 기술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공예 목공예 등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오미나미는 농림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균형잡힌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자는 뜻으로 `창조적과소`라는 말을 사용했다. 창조적과소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는 15세 미만 어린이가 있는 4인 기준 5개 가족, 즉 20명을 매년 유입시키면 지역사회 유지가 가능하다는 도쿠시마대학 교수의 조언을 받아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20명을 매년 이주시키면 관내 2개 초등학교가 2035년에 한 학년에 20명씩 학생들을 두는 학교로 유지 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오오미나미의 헌신적인 노력은 2011년에 결실을 맺게 된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자력발전 사고로 IT기업들의 백업시스템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 되면서다. 동경 등 대도시에 있는 기업들의 지방 진출이 시작되면서 산골마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명함을 관리해주는 산산(san san) 회사, 엡디자인 회사인 당크소프트(dank soft) 등이 본사는 동경에 두고 써테라이트 오피스(위성지사)가 가미야마에 이전해 왔다. 대도시에 모여 살던 IT맨들이 한적한 농촌으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크소프트 관계자는 위성지사 설립은 워라밸 즉 일과 생활의 균형잡힌 생활태도가 중요하다고 보고 지방에 있는 우수한 인재를 등용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연이 풍요로운 농촌은 대도시에 비해 창조적인 일을 하기가 더 좋다고 설명했다. 그후 위성지사는 설립 후 가미야마 출신 23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10여년 지난 후 동경본사 직원과 농촌 위성지사 직원의 생산성을 비교해보니 가미야마에 근무한 직원의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가미야마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농가의 지도를 받아 가면서 쌀농사도 한다. 산촌생활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이제 농촌을 떠날 생각을 안한다.  

변화된 산골마을 가미야마는 2011년 일본 국영방송 NHK가 “IT기업이 농촌에 이주한 이유?”라는 제목의 뉴스가 방영 되면서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내용은 이렇다. <한 여름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당크소프트 젊은 직원 2명이 무릎위에 노트북을 사용해서 멀리 떨어진 동경에 있는 동료직원과 TV회의를 하고 있다.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운가?. 물소리 새소리도 들리고 푸르른 숲속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모습.>의 영상 화면이 방영되었다. 동경의 본사를 둔 IT기업이 인구소멸예상의 산촌에 지사를 두고 텔래워크를 하는 모습의 영상을 본 일본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일으켰다.

오오미나미씨와 그린밸리회원들의 노력으로 산골마을에 거주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대도시에서 91세대 161인이 이주해 왔다. 이들은 웹디자이너 컴퓨터그래픽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전문가, 구두디자이너 등 창조적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IT벤처기업이 동경이나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가미야마에 위성지점을 개설하거나 아예 본사까지 옮겨와 가미야마와 인연을 맺은 기업은 현재 16개사에 이른다.

최근에는 가미야마 지역 주민과 NPO그린벨리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고향마을의 장래를 짊어질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가미야마온통전문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2023년 개교 준비로 10억 엔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지역 내의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가장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의 일자리를 지역 내에서 마련하기 위해서다. 교직원 18명으로 하고 매년 5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산산회사의 사장 대라다(寺田)는 이 교육사업에 수억 엔의 개인자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부족한 재원은 크라우드 펀딩과 고향세 도입 등을 통해 충당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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