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무 배추 여러분, 기호 ○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정치인 한 사람이 고향마을에 오더니 배추밭에 대고 이렇게 허리를 잔뜩굽혀 인사를 하였다. 무 배추가 알아들을 리는 없고 마을사람들이 우리에게 해줄게 뭐냐고 이 정치인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당선되면 곧장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이 동네는 강도 없는데 무슨 다리를 놓습니까?" "예, 그러면 강을 반드시 유치하겠습니다"

얼마전 선배 한 분을 만났더니 우리 정치문화가 막장까지 왔다고 하며 들려준 이야기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후보들의 언행을 보면 지나친 과장도 아닌듯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첫째는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때문이다. 올림픽경기는 금 은 동메달이 있지만 정치인을 뽑는 선거는 딱 한명만 살아남는다. 만표차이가 나든 열표차이가 나든 승자는 딱 한명 뿐이다. 붙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 완전히 오징어게임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당선될 궁리만 한다.

둘째, 특권이 지나치게 많다. 국회의원은 보좌관 비서관 운전기사를 둔다. 세비와 활동비가 있고 여러가지 특권을 누린다. 대학교수 대기업사장 국회의원을 모두 경험한 사람에게 어떤 직업이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니까 이런 답을 하였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최고지. 4년마다 선거만 없으면 평생하고 싶은 직업이야" 그래서 국회의원 세비를 줄이고 특권을 축소하자는 여론은 높아지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죽기살기로 싸우던 여야의원들이 자기들 실속차리는데는 의기투합하기 때문이다.

셋째, 아군적군 프레임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선진국은 정치무관심이 문제인데 우리는 몇명만 모이면 정치이야기다. 문제는 진보 보수로 나뉘어 적대적 대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친구간에도 다투고 심지어는 가족간에도 언쟁을 한다. 일단 한쪽으로 줄을 서면 진위와 선악의 분별이 어려워진다. 우리편이 잘못한 것은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상대편이 잘한 것은 죽기살기로 헐뜯는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이 추진하던 정책중 성공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부터 허물어 버린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넷째, 정치기생충들 때문이다. 각 캠프에는 수많은 학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지식인들이 몰려있다. 지지할 정치이념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 집권하면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몰린다는 소식이다.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인사 문제로 시끄럽다. 캠프에 있던 경력으로 장차관도 하고 대사도 하고 공기업 사장이나 임원도 한다. 야당일 때 이걸 비난하던 사람들도 집권하면 똑같은 짓을 한다. 그러니 캠프에는 온갖 야망가와 기회주의자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선거가 몇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과거 행실을 보아도 기가 막히고 요즘 말싸움을 보아도 기가 막힌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평범한 시민의 언행만도 못한 언행을 반복하고 있다.  정책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약점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잘못이 드러나면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또다른 잘못을 찾아 물타기를 하고 있다. 본인들의 욕설과 막말은 보통이고 조폭 사기꾼 투기꾼 연루설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의 최대 비극은 좋은 후보를 뽑는 방식이 아니라 덜 나쁜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막장 대통령선거로 오기까지 유권자들은 어떻게 살아온걸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선거를 통해서다. 유권자들이 가지는 투표권은 소중한 권리이자 의무다. 우리는 과연 이 권리와 의무를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게 행사해 왔는가.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연 학연 혈연등 연고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았는가. 정치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빠져 맹목적 지지나 반대를 하지는 않았는가.

역대로 정권이 끝나갈 때가 되면 손가락을 탓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가 잘못 찍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잘못한 걸 아는 사람은 다행이다. 한번 찍었으니 내사전에 배신은 없다고 더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이번 대통령선거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린 선거라고 한다. 막장까지 왔으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이번 선거를 제대로 하기위한 방안을 고심하다 하나를 찾아내었다. 역발상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지지하던 후보가 아니라 그와 경쟁하는 후보의 장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가 살아온 길, 인간성, 정책, 수행능력등을 일부러 '긍정의 안경'을 끼고 찾아보는 것이다. 찾으면 안 나올리가 없다. 이걸 다 찾아내 보고 단점과 비중을 비교해 보면 된다. 내가 지지하지않는 사람의 단점과 약점을 열거하라면 수없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장점을 나열하려면 별로 나오지않을 것이다. 장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찾으려 하지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을 비난하지말고 유권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낡은 정치문화에 찌든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각 후보들을 꼼꼼히 비교해서 제대로 뽑아야 한다.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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