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 386운동권 세력이다. 386은 3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를 의미한다. 대학생 시절을 공부가 아니라 데모로 보낸 민주화투쟁 핵심세력이다. 넓게는 그 당시 대학을 다닌 세대 전체를 말하고   좁혀서는 그중에서 운동권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세자리 숫자중 변하는 건 맨 앞자리 뿐이니까 386이 486이 되었다가 586으로 바뀌었고 이제 686으로 들어서고 있다. 세월이 가면 786도 되고 886도 될 것이다. 

이들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김영삼정권부터다. 이 때 국회의원 비서나 청와대 직원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일부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당시는 나이가 30대이기 때문에 중요 보직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486이 되었다. 40대부터는 국회의원도 나오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나오고 정무직 관료로도 성장하였다. 또한 진보정당의 핵심당직을 맡고 시민단체의 장이나 사무총장으로 변신하였다. 

마침내 문재인정부에서 이들은 국정주도세력이 되었다. 이들중 상당수가 국회의원,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자체장, 공공기관장, 시민단체장이 되었다. 박근혜정권을 탄핵으로 무너뜨린 촛불혁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끈 것이 아니라 586이 주도세력이다. 초대 대통령실장도 586 운동권의 대표적 인물인 임종석이다. 

문재인정권에서는 청와대도 정부도 여당도 586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정권 수립을 위한 투쟁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 사람들이 국정주역이 되었으나 곳곳에서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뭉쳐서 투쟁하던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우리가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선민의식 때문에 독선적 국정운영이 반복되었다. 국정실패가 나와도 젊은 시절 민주화 투쟁에 바친 공로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위아래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80년도 이후에 탄생한 MZ세대는 586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에게는 내로남불 세대로 각인되어 있다. 왕년에 많은 걸 희생하며 민주화운동을 한 유공자라는 것이 MZ세대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이들이 태어나서 성장할 때는 이미 민주화가 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합리성과 공정을 중시하는 세대다. 잘못이 있으면 시인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운동권출신 586은 유난히 잘못을 시인할줄 모르는 특성이 있다. 잘못을 시인하면 투쟁력이 저하된다고 여기는 운동권문화 때문이다. 잘못했을 때 쿨하게 사과하지않고 남탓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MZ세대에게 586운동권은 매력도 의미도 별로없는 꼰대세대가 되었다. 

이제 586세대가 686세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중 핵심인물들은 국회의원을 몇번씩하고 정당대표도 하고 장관도 하며 권력을 누려왔다. 같은 586이라도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은 별 혜택이 없었던데 비해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은 과도한 혜택을 본 것이다.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된  이들에게 아직도 민주화투쟁의 빚을 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여년간 민주화 유공자로 많은 혜택을 보면서 기득권세력이 된 이들이 아직도 더 권력을 쥐려고 하는데 젊은 MZ세대가 지지하겠는가. MZ세대에게는 이들이 바로 청산해야할 신기득권세력이고 신적폐세력인 것이다.

이번 선거는 산업화세력대 민주화세력 그리고 보수세력대 진보세력의 대결구도가 약화되고 2030 MZ세대가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 대통령후보 진영에서 이걸 모를리 없다. 이재명후보측도 MZ세대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586 기득권 세력과의 결별이다. 지금 여당지도부도 586이고 캠프에도 586이 잔뜩 들어와 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MZ세대의 표를 모으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후보측도 MZ세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않는다.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 신세대가 아니라 올드보이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공지능, 메타버스, 우주산업으로 뻗어나가는데 노인들이 이걸 이해하고 이끌어갈지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MZ세대들은 젊은 당대표를 뽑았을 때 환호하였다. 그런데 지금 김종인이라는 어르신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모셔왔다. 이 분은 지금 여든살이 넘었다. 대한노인회장보다도 연세가 많다. MZ세대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증조할아버지다.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다.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총괄선대위원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연일 뉴스를 장식할텐데 MZ세대들에게는 호감대신 반매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윤석열후보 캠프에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뿐만 아니라 올드보이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면면을 보면 모두 구태정치시대의 인물들이다. 

민심을 얻어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우리편 민심이 아니라 중도층의 민심을 잡아야 이긴다. MZ세대는 참신한 인물, 참신한 정치를 원한다. 그동안 권력을 누려온 586운동권 출신이나 진영싸움 덕분에 계속 금뱃지를 달고 있는 보수정치인들 상당수가 스스로 차기 총선 출마포기를 선언해야 할 때다. 아니면 후보가 퇴출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단 한명도 기득권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 두 진영은 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들로 캠프를 차려놓고 표를 달라고 한다. 기가 막힌다. 양측 진영중 어느 쪽이 기득권 인물을 더 많이 털어내느냐가 이번 대통령선거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