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대출 신용점수 평균 944.2점…1등급도 불안

정부의 초고강도 대출 규제가 이어지면서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초고신용자가 아니면 은행권 대출 문턱도 밟지 못하게 되면서 중·저신용자들은 물론 일부 고신용자들의 발길까지 저축은행으로 향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11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 은행권에서 가계대출(신규 취급액 기준)을 받은 차주의 신용점수는 평균 926.9점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가 집계된 지난 2023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5월만 해도 919.9점이었던 차주 평균 신용점수는 '6·27 가계대출 관리 방안'의 영향으로 한 달 만에 7점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914.4점)과 비교해도 12.5점이 높아진 셈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를 위한 초고강도 대출 규제를 펼치면서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조이자 이제는 신용등급이 2등급(891~941점)에 해당하는 고신용자들도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게 됐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으로 한정하면 평균 신용점수가 사상 최대치인 944.2점까지 올라가는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용 1등급(942점 이상)도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 속 수익성과 건전성을 모두 잡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자산건전성과 자본비율 관리에 모두 도움이 되는 초고신용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일한 금액을 내주더라도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위험가중치가 낮아져 자본비율 관리가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초고신용자인 만큼 연체 가능성이 낮아 부실로 이어질 확률도 떨어진다.
문제는 높은 문턱에 자금줄이 막힌 중저신용자들이다. 신용 하위 50% 이하 중·저신용자를 위한 저축은행 중금리 신용대출 잔액은 올해 2분기 3조원으로 지난해 말(3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2000억원 감소한 상황이다.
은행권에서 밀려난 고신용자들의 발걸음이 2금융권으로 향하면서 중저신용자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일례로 저축은행 1위사인 SBI저축은행의 직장인 신용대출 상품 'SBI퍼스트대출’에서 신용점수 900점 초과 비중은 약 23%에 달했다. 전월보다 무려 4%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제도권 금융에서 이탈한 중저신용자들은 자연스레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해 저신용자 약 2만9000명~6만1000명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산됐다. 국정기획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현재 90%인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80%대까지 낮춘다는 자산건전성 개선 로드맵을 만든 이상 이 숫자는 올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서민의 자금줄을 틀어막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정부도 몇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고정금리 대출에 대한 예대율 가중치를 완화해 상품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예대율은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 중에서 얼마나 대출로 내보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현재 은행들은 조달한 예수금을 넘는 수준으로 대출을 취급하지 못하게 규제받고 있다. 특정 상품에 대한 예대율 가중치가 낮아지면 상대적으로 적은 예금만으로 대출을 내줄 수 있어 공급 확대 효과가 나타나게 난다.
대출금리도 수술대에 올린다. 현재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출연금 등 가산금리를 더한 후 우대금리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정부는 은행이 그간 가산금리 중 법적 비용을 차주에게 전가했다 판단하고 출연금의 50% 이내만 금리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