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영면하였다.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정치사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고인은 12.12사태에 주도적으로 가담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군인정치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당시는 민주화의 열풍이 폭발하던 시절이라 재임중 여야의 눈치를 보며 신중한 처신을 하였다. 별명이 물태우였다. 그러나 북방외교, 국민연금도입, 일산 분당 신도시건설, 88올림픽 성공개최, 인천국제공항 건설, 범죄와의 전쟁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재임중 가장 괴로웠던 일은 평생 친구이며 동반자였던 전임 대통령을 백담사로 귀양보낸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용암처럼 솟구치는 민심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뒤이어 취임한 김영삼대통령은 평생 군부독재 타도를 외친 민주투사다. 최장기 단식투쟁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일단 투쟁목표가 정해지면 목숨걸고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김대통령은 집권후 군사정치의 뿌리를 뽑는다는 각오로 군인출신들을 사회 각 분야에서 퇴출시켰다. 특히 그동안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육사출신들을 배제시켰고 육군내 엘리트집단으로 불리던 하나회에 철퇴를 내렸다. 그때부터 군의 위상은 지나치게 위축되었다. 전임 노태우대통령은 12.12군사반란과 재임중 비자금 2628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법정에 세웠고 결국 감옥으로 보냈다. 김영삼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세계화를 내걸었지만 군사정권의 적폐청산이 주요 국정과제였던 셈이다. 

뒤이은 김대중대통령은 처음부터 정치보복을 하지않겠다고 공언하였다. 전임정권 청산작업도 거의 하지않았다. IMF체제하에서 국민통합이 더 시급한 과제였다.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은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갈등도 만만치않았다. 동교동계 참모들이 전임 정권의 잘못을 파헤치려했을 때 김대중대통령 스스로 김영삼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 노무현대통령은 전임 정권을 털어내야할 이유도 명분도 별로 없었기에 적폐청산도 별로 없었고 보수 기득권세력을 물갈이하는 수준이었다. 

이명박정부는 집권초기 광우병 시위때부터 군중의 힘에 눌려 전임정권 청산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노무현대통령이 수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일이 생기면서 민심이 들끌었다. 따라서 경제안보외교, 4대강사업, 창조경제, 원자력발전소 수출, 자원외교, 녹색성장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고 추진하였다. 과거사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입장을 취했다. 

박근혜대통령은 같은 보수정권이었지만 그동안 쌓인 갈등때문에 전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전임정권의 비리를 파헤쳤고 업적은 애써 외면하였다. 동시에 그동안 세력이 커진 진보세력들을 제어하는 작업도 강하게 추진하였다. 민주노총 해산, 역사바로세우기, 국정교과서 추진등 강경책으로 보수의 전통적 가치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국정농단 논란으로 불거진 촛불시위에 몰려 결국 탄핵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권은 국정 제1과제가 적폐청산이었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 아예 적폐청산위원회를 두고 과거사를 샅샅이 파헤쳤다. 많은 사람들이 적폐로 몰려 추방되고 형사처벌 되었다. 급기야 전임 대통령 두명이 법정에 서게되고 지금도 감옥에 갇혀있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비극이다. 

왜 정권을 잡으면 적폐청산에 매달리는 것일까?

첫째는 차별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은 지난 정권과는 다르다. 지난 정권은 끝났으니 우리와 함께 가자는 것이다.

둘째는 전임정권의 공적지우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이 잘못한 것을 보면 화가 나지만 잘한 것을 보면 화가 더 난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문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셋째는 정적 제거를 위해서다. 상대진영 주요인물들의 흠집을 찾아내어 퇴출시켜서 재기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개혁을 하려면 제도를 고쳐야하는데 사람을 뽑아낸다. 낙하산인사가 적폐라면서 지난 정권 인사들을 뽑아내고 우리편 인사를 앉히는 식이다. 이게 무슨 적폐청산인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다음 정권도 적폐청산을 할지 궁금해진다. 만약 야당이 정권교체를 한다면 대대적인 적폐청산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후보들 모두 현 정권의 국정난맥과 부정부패를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후보가 집권하면 어떨까? 이후보는 부패한 기득권세력을 싹 갈아엎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일단 그동안 권력과 부를 누려왔던 보수기득권층이 적폐대상이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지난 20~30년동안 온갖 기득권을 누려온 진보진영 기득권층도 청산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재명후보가 집권하는 것은 정권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야후보 지지자들도 적폐청산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누가 차기대통령이 되든 적폐청산의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 것으로 예측된다.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세계는 지금 4차산업혁명, AI혁명, 메타버스, 뉴스페이스시대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데 허구한 날 적폐청산과 과거사정리에만 매달리고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한가지 제안한다. 누가 당선되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100대 추진과제만 발표하지말고 지난 정권의 정책중 계승할 것을 추려서 국민에게 미리 발표하는 것이다. 이래야 국력낭비도 줄일 수 있고 국민갈등도 줄어들게 된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는 적폐청산을 청산하라.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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