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등 기후 전환 사업에 157조 투자…"정부 차원 안정적 지원"
방산 수출 확대는 미지수…"프랑스와 함께 K-방산 견제 움직임"

독일 정부의 재정 확대 움직임에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가 전기자동차 시장 캐즘 극복 효과를 볼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여겨진다. 방산 또한 기대감을 받고 있지만, 일부 부품 업체를 제외하고는 독일의 지출 확대 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신임 연정인 기독민주연합(CDU)/기독사회연합(CSU)와 사회민주당(SPD), 녹색당은 국방비 조달에 필요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 부채 차입을 허용하도록 헌법(독일 기본법)을 개정하고, 산업·인프라 투자에 향후 10년간 5000억 유로(약 791조원)의 특별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부채 차입 비율을 GDP 대비 0.35%였다.
5000억 유로의 인프라 투자 금액 중 1000억 유로(약 157조원)은 기후 전환 사업에 투입된다. 또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내용도 헌법에 명문화하기로 함에 따라 주춤했던 독일 전기차 시장이 다시금 살아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은 "확장 재정 정책으로의 전환은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안정적인 직접 지원이 가능케 됨을 의미"한다며 "독일과 예산의 일부를 공유하는 여타 EU 국가들까지 정책이 수정되면 산업 육성 효과가 더 커질 것이며, 독일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부활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한 직접 지원도 활성화될 것이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도로교통청(KBA)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 신규 등록된 전기차 수는 38만609대로 2023년 52만4219대 대비 27.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유럽 시장에서 5000대 감소한 것을 반영하면 독일의 전기차 시장 둔화세가 유럽 전체 물량에도 영향을 줬다.
독일이 유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들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1월 유럽에서 전년 대비 전기차 등록대수가 4만5000대 늘어난 가운데 독일에서 1만2000대 증가했다. 1월 독일 전기차 시장은 유럽 전체 판매량의 20.4% 차지하며 지난해 연간 비중 13.5%를 훌쩍 뛰어 넘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로서는 이미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가운데 경쟁자들은 반대로 경쟁력을 잃고 있어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올해 2월 현대차는 유럽 판매량이 전년 대비 4% 가량 줄었지만 친환경차는 23.6% 늘었다. 기아는 친환경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3.9% 감소했지만, 순수전기차는 48.1% 증가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캐스퍼 일렉트릭(현지 모델명 인스터), 기아는 올해 출시할 EV2로 소형 모델을 선호하는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으며, 우선 테슬라의 빈자리를 가져올 수 있다. KBA에 따르면 올해 2월 테슬라 차량은 1429대가 신규 등록되며 지난해 2월 6038대 대비 76.3%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2.8%에서 0.7%로 줄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독일대안당(AfD) 등 각국 극우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진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또 BYD가 올해 2월 185대로 전년 동기 대비 96.8%, 폴스타가 263대로 60.4%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중국 생산 제품에 대한 유럽 정부의 견제가 시작되면 증가세도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폭스바겐도 2024년 친환경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8% 줄어든 가운데 최근 유럽 공장 구조조정에 나선 영향이 올해 나타날 것이기에 현대차와 기아로서는 기회다. 현대차는 올해 유럽 판매량 목표치로 지난해 6만9000대 대비 두 배 높은 14만 대, 기아는 2028년까지 연간 판매량 80만 대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제기한 바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해 제조사별 'xEV' 시장 7위 브랜드에 올랐다.

독일에서 전기차 시장이 살아나면 현지 공장 가동을 계획중인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수혜를 볼 수 있다.
SK온은 헝가리 1,2 공장에 이어 3공장까지 가동을 시작했고 이는 유럽에 위치한 SKIET 분리막과 SK넥실리스 동박 공장과도 연계할 수 있다.
또 삼성SDI도 헝가리 2공장 이어 3공장 투자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공장을 현재 연간 86기가와트시(GWh)에서 올해 100GWh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반면 방산은 기대만큼 수혜를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독일은 방산 산업에 있어 수출 대상 국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경쟁 국가에 가깝다. 삼일회계법인은 "독일과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 내 한국 무기 도입에 대한 견제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실제로 독일 자주포 PzH2000와 K9, 현대로템의 K2전차와 독일 레오파르트 등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독일은 2019~2023년 사이 글로벌 무기 수출 점유율 5.8%로 상위 5위권 국가다. 우리나라는 2.0%로 10위다.
독일이 늘어난 예산을 방산 제조역량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가능성도 있으며, 그 경우 오히려 유럽 시장에서 독일과의 경쟁이 더 격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은 최근 '안보 및 방위산업 연방 협회(BDSV)'가 "방위산업 병목 현상 해소를 위해 자동차 부문을 군용 장비 생산으로 전환 제안"하기도 했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독일은 그동안 방산 산업에 있어 우리나라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나라다. 2019~2023년 우리나라 주요 방산 수입 대상국가에서 미국(72%)에 이어 15%로 2위 국가다. 또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독일에 수출한 품목 중 차량(HS코드 8703)이 금액 기준 12억9376만 달러(약 1조8694억원)로 전체의 14%를 차지하며 1위 품목이다. 이어진 품목들은 차량 부품과 전화기, 선박, 의약품, 축전지, 축전기 등이다.
이와 비교해 2023년 국내 방산 수출의 35% 가량을 차지하는 폴란드는 ‘전차와 그 밖의 장갑차량’(HS코드 8710)이 11억444만 달러(약 1조5959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금액의 14%를 차지하며 2위 품목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