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 강조하는 정부…부실채권 늘며 충당금 부담되는 금융권

기업대출 연체율이 6년 반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을 제한하고 기업금융을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은 자본적정성 비율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도 리스크가 높은 대출에 더 많이 노출돼야 해서다.
특히 경기침체가 길어지며 중소기업들의 연체율이 크게 뛰자, 일각에서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본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2일 은행연합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금 연체율은 0.9%를 기록했다. 이는 2018년 11월 0.9% 이후 최고치다. 2022년 0.3%까지 낮아졌던 연체율은 2024년 0.6%로 증가했고 꾸준히 상승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 연체율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2022년 0.3%에서 올해 5월 0.5%로 0.2%p(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기업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3%에서 0.9%로 크게 뛰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1개월 이상 연체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 연체율은 2023년 중순 0.51%에서 올해 5월 0.95%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대기업 연체율은 0.12%에서 0.15%로 소폭 증가에 그쳤다.
금융지주 산하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평균은 0.5%로 작년 2분기 0.39% 대비 0.11%p 늘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증가는 내수 경기 침체 장기화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보다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이 더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 중 3년 이상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도 지난 2019년 15.6%에서 2023년 17.4%까지 늘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은행들의 '이자 놀이'를 지적하며 생산적 금융을 주문했다. 투자를 늘려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지원해서 혁신 기업들의 성장을 통해 은행도 수익을 얻고 기업도 키운다는 구상이다. 그간 은행들이 주담대에 집중하는 영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린 것을 지적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출범 초 '새정부 성장정책 해설서-대한민국 진짜성장을 위한 전략'에서 "은행권 등의 민간자금이 부동산 및 가계대출 부문에 과도하게 몰려 있어 기술 발전이나 생산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이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같은 기조에 발맞춰 금융위원회는 하반기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절반으로 줄였고,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상향하는 등의 조치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대출을 실행할 때 위험가중자산(RWA)를 계산해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 주담대의 경우 RWA 하한이 현행 15% 수준인데 반해 기업대출은 최대 400%까지 적용된다. 정부는 주담대 RWA 하한을 25%까지 올리고 첨단산업 및 국가 전략기술 투자 등의 RWA를 100%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기업대출 연체율이 올라가는 경우 은행들의 충당금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4대 은행은 지난 2년간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크게 떨어졌다. 올해 1분기 4대 은행의 평균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69.78%로 2023년 말 246.35%와 비교하면 76.22%p 낮아졌다. iM뱅크 및 지방은행들의 적립률 하락폭은 더 크다.
부실채권을 의미하는 고정이하여신 총합은 올해 1분기 기준 4대 은행이 4조 8225억원으로 2023년 말 3조 3864억원 대비 1조 4361억원 늘었다.
금융권에서는 높아지는 기업대출 연체율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생산적 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자본 규제 완화 등 금융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호경기에 기업 성장이 촉진되면 은행들도 기업대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연체율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업대출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럼에서 생산적 금융, 상생금융 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