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상법개정·노란봉투법 후속 조치로 배임죄 폐지 논의
경영계 "경영 위축, 조속한 폐지 필요"…일각선 "시기상조"
당정이 배임죄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 1·2차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강력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배임죄에 대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경영계의 호소에 응답하고,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낡은 규제를 걷어 내겠다는 취지다.
4일 재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배임죄 폐지를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한국에서 기업 경영 활동하다 잘못하면 감옥 가는 수가 있어서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라며 "배임죄가 남용되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점에 대해서 제도적 개선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제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정기국회 안에 추진할) 경제법안 중 대표적인 것은 배임죄 폐지"라며 "경영판단의 원칙까지 처벌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확실하게 매듭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발맞춰 여당은 같은날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고, 지난 3일에는 경제 6단체장과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했다.
간담회 자리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에 대해) 경제계는 부작용을 우려해 여러 차례 검토 의견과 대안을 제시했지만 충분한 보완 대책 없이 통과해 매우 안타깝다"라며 "부작용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후속 조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손경식 회장은 현행 배임죄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배임죄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 상법 개정과 맞물린 배임죄 폐지
경영계에서 배임죄 폐지 요구가 높아진 것은 상법 개정과 관련이 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되면서, 경영상 판단이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칠 경우 이사 개인에 대해 일반주주가 배임죄로 고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최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충돌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확대되면 소송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들면, 미국의 상호관세 및 장기 경기침체 상황에서 공장 폐쇄 혹은 생산기지 해외 이전, 대규모 투자 등 경영상의 판단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이에 동의한 이사에 대해 집단소송 등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에 쟁의 행위의 요건을 확대하는 노란봉투법까지 통과되면서 경영상 판단이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현행 상법은 제622조에서 특별배임죄를 '사용인이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조항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와 구성 요건 및 처벌 내용이 중복돼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배임죄를 폐지하고 경영 판단 원칙 명문화를 통해 구체화 해 경영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배임죄 폐지 법안의 내용은?
최근 활발하게 논의중인 배임죄 폐지 및 완화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상법상 특별배임죄 삭제와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가 핵심이다.
우선 형법에서는 제355조(배임)와 제356조(업무상 배임)의 완전 삭제 혹은 전면 무력화가 논의된다. 현재 형법상 일반 배임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 업무상 배임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금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는 특정재산범죄 가중처벌이 적용돼 3년 이상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다.
형법상 배임죄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전면 삭제와 축소를 두고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권칠승 의원(TF단장)은 "배임죄를 슬림화해야 하는건 틀림없는데 어떤 모양으로 바꿀지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법상 특별배임죄 역시 다양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특별배임죄 조항을 삭제하고 형법상 배임죄를 경영상 판단의 경우 배임죄 적용 배제를 명문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배임죄 기준을 '회사를 위한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 한정하고, 형법에서 업무상 배임 규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특별배임죄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해 범위를 제한하고, 형법의 배임죄를 '재산상 이익을 취득할 목적 또는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로 구체화 하는 법은을 추진중이다.
◆ 기대와 우려 함께 나오는 배임죄 폐지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가 기업을 사유화하는 문화가 여전한 한국에서 배임죄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형사 대신 민사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강제력이 약하고 입증이 어려우며 대기업과의 소송전도 부담이라는 주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배임죄 폐지 또는 완화에 대해 "사실상 재벌 총수나 기업의 소수 지분 소유 경영자들의 형사법적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섣부른 배임죄 폐지 추진은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 진정한 의미의 자본시장 선진화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재벌에서 중소기업까지 일감 몰아주기, 사익 편취 등 한국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배임죄 폐지 추진 언급은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 기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형사 처벌 감면에 나설 것이 아니라 이사의 충실 의무 강화, 주주권 보호 확대 등을 뒷받침할 실효적 제도 개선에 나서 진정한 자본선진화의 기틀을 공고히 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반면 경영계는 상법·형법·특경법상 배임죄 폐지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실제 우리나라에서 최근 7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이 일본의 31배에 달한다는 점은 우리나라가 배임죄를 지나치게 넓게 적용하면서 우리 기업인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