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선출 1명씩…3%룰·집중투표제 '무력화'
경제 8단체 "경영권 방지 장치 마련 시급"

1·2차 상법 개정으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와 3%룰이 도입된 가운데, 경영계는 이사의 '시차임기제'로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사전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약 1년여다.
5일 정치권 및 재계에 따르면 대규모상장회사 집중투표제 도입 및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에 관한 상법개정안은 지난 8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데 이어 9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대통령 재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대통령 재가로 법률이 공포되면 개정법은 공포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각 기업이 상법 개정에 대비해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개선할 유예기간이 1년 주어지는 셈이다.
현행 이사 선출은 이사 후보자별로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주주의 의중에 따라 모든 이사를 선출할 수 있다.
◆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선임 예정인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투표권이 부여되고, 주주는 투표권을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된다. 예를들어 선임해야 할 이사가 3명이라면 주주에게는 1주당 3표의 투표권이 생기고, 주주는 3표를 한 후보에게 행사할 수 있다.
요컨대 3주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9표의 투표권을 한 후보에게 행사할 수 있다. 투표가 마감되면 다득표 순으로 이사가 선출된다.
소액주주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이사 후보를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고, 주주제안이 있는 경우 이사회는 특별한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이를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 상장회사는 1% 이상, 대규모상장사는 0.5% 이상을 6개월 이상 연속 보유하면 주주제안권이 생긴다. 비상장회사는 3%다. 여러 주주가 연합해도 조건을 충족하면 이사 후보 제안이 가능하다.
이에 경영계에서는 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고, 이사회가 파벌화 되어 경영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 왔다. 또 경영정보 유출과 적대적 M&A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밖에도 주총 준비를 위한 행정 업무 부담과 1주 1표 및 자본 다수결의 원칙이 침해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여당과 새 정부가 이같은 상법 개정에 나선 것은 국내 기업문화가 소액주주의 권익보다는 재벌 등 총수 일가의 이익만을 추구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제고한다는 취지다.
◆ '시차임기제'로 집중투표제 무력화 할까
집중투표제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재계에서는 이사의 '시차임기제'를 통해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의 일반 이사 임기는 상법상 최대 3년이다. 정관 규정에 따라 임기 중 만료 시점이 결산 시기와 겹치는 경우 결산기 정기주총 종료까지 연장은 가능하다. 상장사 사외이사의 경우 한 회사에서 연속 최대 6년까지 재임할 수 있고 계열사를 포함해도 최대 9년까지 가능하다. 다만, 정관에 따라 일부 탄력적 운용은 가능하다.
'시차임기제'는 이사의 임기를 제각각 다르게 해 주총에서 1명의 이사만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1명의 이사만 선출하는 경우 투표권이 분산되지 않는 최대주주가 표 대결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어서다. '시차임기제'는 이사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경우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소액주주가 1명의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전체 발행 주식의 1/(n(선임할 이사 수+1)주가 필요하다. 3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3+1로 25%의 지분을 확보하면 최소 1명의 이사를 선출할 수 있다. 만약 선임 이사 수가 4명이면 20%, 5명이면 16.7%가 필요하다.
◆ 집중투표제와 3% 룰의 효과…경영권 방어 방안도 필요
3% 룰도 부담이다. 3%룰은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최소 1명 이상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야 하는 제한도 있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소멸되는 투표권 지분율도 높아진다.
이에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이 3% 룰에 더욱 민감하다. 집중투표제로 선출된 이사가 3%룰에 따라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경우 경영권에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부분이다.
경제 8단체는 2차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지난 7월 1차 상법 개정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 및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박건영 KB증권 ESG애널리스트는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거나 결집할수록 최대주주의 이사회 장악력이 저하되는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다"라며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기까지 다양한 변수(이사회에 주주제안권 행사, 시차임기제 여부, 소액주주들의 결집력)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어 "개정법 도입과 환경 변화에 따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들은 지배력 유지를 위한 추가 지분 매입 등 지분율을 높이는 방어 전략이 검토될 수 있다"라며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이사회가 한쪽 지배주주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당정은 자사주 의무 소각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준비중이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오너 일가의 지분이 낮고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그간 국내 대기업들은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M&A를 통해 발생한 자사주를 소각 또는 매각하지 않고 보유하며 지배력 강화에 활용해 왔다. 혹은 우호 세력에 자사주를 넘기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유지했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이같은 방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