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투자수익 1대9 말도 안 돼”…직접투자 여전히 쟁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결렬 고비를 맞는 듯했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미약하나마 다시 동력을 얻는 모습이다. 총 3500억달러(486조원)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두고 한미 양국이 정면충돌했지만,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화의 불씨를 일단 살렸고,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의를 이어가기 위해 곧바로 투입됐다.

15일 당국에 따르면 여 본부장은 이날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장관이 지난 11∼14일 긴급 방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대미 투자 의제를 놓고 협의했지만 구체적 성과물을 내지 못한 직후다.

외교가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투자 분야 쟁점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서도 대화 동력을 살린 데 우선 주목하는 분위기다.

당국자는 “김정관 장관이 방미해 투자 중심으로 한국이 처한 어려움에 관한 설명이 있었을 것”이라며 “미국이 이에 전적으로 수긍했을지는 의문이나 (미국이) 대화를 이어갈 여지는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 관한 협의는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놓고 한미는 이달 실무 협의를 본격화했지만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이행 방안을 놓고 한미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일본에 '투자 백지수표'를 사실상 관철한 미국은 한국에도 같은 방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500억달러 대부분을 지분투자 방식으로 하고 이를 단기간에 자국 내 특수목적법인(SPC)에 '입금'하라는 것이다.

투자 이익도 원금 회수 전까지 한국과 미국이 9 대 1 비율로 가져가되, 원금 회수 뒤에는 이 비율을 거꾸로 미국 9, 한국 1로 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투자 패키지 중 지분투자는 5% 정도로 하고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으로 하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에 미국 구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한국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 급속히 부상했다.

3500억달러는 한국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20%의 규모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2026년도 예산안(728조원)의 67%에 달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금액을 3년에 걸쳐 현금으로 넘겨준다고 가정하면 매해 국가 예산 약 20%를 미국에 고스란히 바쳐야 해 정부의 가뜩이나 빠듯한 재정 운영이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설령 이런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도 외환 위기 초래 가능성이라는 심각한 현실적 문제가 또 있다.

사고가 나야 돈이 나가는 보증과 달리 지분투자나 대출은 한국 정부와 공적 금융기관이 마련한 재원을 달러로 환전해 미국에 보내야 한다. 단기적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대량의 달러 수요가 생겨나 원/달러 환율 급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4163억달러 수준이다. 한국이 현재 외환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달러 규모는 연간 200억~300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부 내에서는 미국의 '3500억달러 투자 백지수표' 안을 그대로 받느니 차라리 15%로 낮춰둔 상호관세가 25%로 복귀되고, 약속받은 자동차 관세 인하(25→15%)나 반도체·바이오 등 최혜국 대우를 포기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강경 대응 기류가 급속히 부상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측도 즉각 강경 반응했다. 러트닉 장관을 앞세워 일본식 투자안을 받지 않으면 관세를 되돌리겠다며 공개적으로 위협 발언을 한 것이다.

다만 최근 김정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만남 직후 대화 결렬 선언 대신 여 본부장의 방미가 곧바로 이어졌고,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의 추가적인 위협성 발언은 나오지 않아 미약하나마 한미 협의의 동력이 살아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대규모 한국인 구금 사태를 의식한 듯 트루스소셜에 “다른 나라나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겁먹게 하거나 의욕을 꺾고 싶지 않다”는 글을 올린 것도 한국의 대미 투자 중요성을 여기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좋은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미중 전략 경쟁 와중에 심각한 위기인 조선업 재건부터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제조업 부흥을 위해 한국을 절실히 필요로 해 트럼프 행정부 역시 관세 전면 재부과 등 한미 관계 파탄을 선택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대강 충돌 국면에서 다시 어렵게 대화의 동력을 살린 모습이지만 3500억달러 투자 방안을 놓고 한미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동차 관세 인하(25→15%) 시점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향후 협상 진전 과정에서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인상될 가능성도 열어 놓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는 협의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 부담과 외화 유출로 이어질 대미 직접투자와 대출 비중을 최대한 현실적 수준으로 낮춰두는 한편 단계적 대미 투자 집행,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등을 통해 외환시장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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