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우리 기업인들에게 중동시장 하면 뭐가 맨 먼저 생각나는지 물으면 십중팔구는 ‘건설프로젝트’라고 대답할 것이다. 1970~80년대 수많은 우리 근로자들이 열사의 땅, 중동에서 피땀 흘려 일해 오일머니를 벌어들였고 이것이 우리가 1~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누구나 기억한다. 통계를 봐도 그렇다. 현재까지 우리는 약 8900억 달러의 해외건설을 수주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중동에서 수주했다. 당시 ‘중동 건설시장’은 우리 경제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러한 중동건설 붐의 원천에는 고유가를 바탕으로 한 중동국가들의 막대한 오일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2014년 하반기부터 6년여 동안은 저유가로 현지의 건설 발주가 크게 줄어들었다. 중동 프로젝트 전문지 Meed에 따르면 2015년 2328억 달러에 달했던 중동 프로젝트 발주량이 저유가로 매년 감소하다가 코로나19까지 겹친 2020년에는 764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우리 기업들의 건설 수주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비단 수주량 감소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어려움도 함께 따라오고 있다. 필자가 주 사우디 대사를 역임하던 2016~18년 초에 현장에서 직접 목도한 바로는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서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시공능력 외에도 프로젝트 기획과 파이낸싱 등을 패키지로 한 토털솔루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발주방식도 과거에는 정부나 공기업이 경쟁입찰이나 수의계약을 통해 대금을 주고 시공을 맡기던 단순시공(EPC) 방식이 주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부족한 재정여력 때문에 프로젝트 수주기업이 자금조달과 리스크까지 부분적으로 떠맡는 민관합작(PPP)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예전처럼 EPC 프로젝트 발주만 기다려서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더 더욱 공사를 할 때 일정 비율의 현지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거나 현지에서 생산된 자재의 사용비율을 높이도록 요구받고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심할 때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계약금이나 공사 잔액을 깎자고 요구하는가 하면, 기성금 지급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씩 지연되고 있다는 하소연도 들려왔다. 실로 건설기업들에게는 고난의 시기이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까지 크게 올랐지만, 중동 건설프로젝트 발주량 증가로 이어지려면 다소간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중동시장을 계속 건설프로젝트에만 연연할 것인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가까운 미래에 중동에서 프로젝트 수주가 회복된다고 한들 현재 방식대로는 그 경제적 효과가 과거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해외에서 건설 공사를 할 때에는 대부분 우리 근로자들을 썼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고스란히 우리한테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중동지역에서 건설공사를 할 때는 노무자들은 대부분 인도나 방글라데시 등 개도국 출신을 쓴다.

자재도 현지 발주처가 자국산 사용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하고 있어 전부 우리 제품만 쓸 수도 없다. 이래저래 국내로 돌아오는 부가가치가 예전에 비해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외건설 수주의 중요성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건설 프로젝트 외에 부가가치가 높고 현지에서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건설프로젝트도 부가가치가 높아지도록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어떤 분야가 중동시장에서 블루오션일까? 현지에서의 대사직과 코트라 사장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중동시장에서의 블루오션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보건의료이다. 중동 사람들은 양고기 등 고칼로리 식품을 많이 섭취한 반면, 더운 날씨 때문에 운동량이 적어 비만, 심장병,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성인들이 많다. 현재까지 의료기기와 의약품 대부분을 비싼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재정부담 완화를 위해 한국산에 관심이 높고 한국 의료기관들의 현지 진출도 희망하고 있다.

둘째는 뷰티 분야다. 중동 무슬림여성들은 머리에 히잡을 쓰고 몸에는 가운의 일종인 아바야나 차도르를 두르기 때문에 그다지 화장품이 필요 없겠다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한 스킨케어제품, 히잡 아래 드러나는 얼굴 부분에의 색조화장품 소비가 날로 들어나고 있다. 최근 한류를 바탕으로 우리 화장품과 뷰티숍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어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중동 뷰티시장 진출은 매우 유망하다.

셋째는 콘텐츠이다. 중동에서는 기후와 자연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야외에서 취미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상과 게임 등 오락용 콘텐츠와 e-러닝 등 교육용 콘텐츠의 수요가 늘고 있어 콘텐츠 시장은 유망한 분야이다.

넷째는 스마트팜이다. 작년 코로나19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화두가 되었는데, UAE 등 일부 중동국가에서는 디지털기술과 수경재배 기법을 활용하여 필요한 야채를 자체 생산하는 스마트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이뤄졌다. 앞으로 더 많은 진출사례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섯째는 중소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지난 수년간 중동에서 대형 프로젝트시장은 매우 부진한 가운데서도 교통 환경 학교 병원 등 사회인프라 프로젝트는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앞으로도 그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했던 EPC 방식이 아닌 PPP 방식 프로젝트를 잘 기획하면 좋은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시대상황이 변하면 우리의 대응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1970~80년대 ‘중동건설 붐’이 우리 경제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제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접근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개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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