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우리나라에 역대 최대 수출실적을 남기고 2021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적인 물류난과 공급망 위기 속에서도 우리 수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회복을 넘어 과거 최대실적을 거의 400억 달러 뛰어넘었다.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 등 주력품목 수출이 고르게 증가한 가운데 차세대 수출품목도 평균 20%가 넘는 증가세를 보여 질적으로도 매우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우리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세계 교역의 회복이 큰 기여를 했기에 이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새해에 글로벌 교역환경이 어떨 것인가로 모아진다.

먼저 올 해 세계경제와 교역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지만 작년에 큰 폭으로 회복됐던데 대한 기저효과로 증가율 자체는 상당 수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기관들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작년 6% 내외에서 올해 4%대, 교역량 증가율도 작년 10% 내외에서 올해 5~6%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대로만 실현된다면 걱정할 수준은 아닌데, 문제는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 세계 각국의 ‘위드 코로나’ 성공여부다. 이들 요인의 진행방향에 따라서는 세계경제의 하방(下方) 가능성도 있다. 이 외에도 최근 미국 블룸버그가 지적한 것처럼 오미크론의 확산, 미 연준(聯準)의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신흥시장의 충격, 중국 부동산 위기, 각국의 재정축소 가능성, 대만․우크라이나 등 국제 긴장사태 발생 우려 등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아세안(5%대)과 미국․유럽(4% 내외) 등 우리 주력시장의 성장률이 비교적 괜찮고,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어 새해 우리 수출을 둘러싼 대외환경 자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런데 기업들의 해외 비즈니스에는 이러한 거시적 요인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정책, 소비패턴 변화, 경쟁기업들의 동향 등 미시적 요인도 중요하다. 올해 예상되는 글로벌 교역환경은 어떨까? 이와 관련 코트라(KOTRA)가 작년 12월 가진 설명회에서는 각 지역별․국가별로 2022년의 시장트렌드와 정부 정책, 진출 유망분야 등이 소개되었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올해 기업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로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자체 공급망 확충을 들 수 있다.      

첫째,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디지털 전환이 더욱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과거와 달리 소비자들의 온라인 구매와 비현금(cashless) 결제가 급증한 가운데 작년 9월 ‘디지털청(廳)’ 출범을 계기로 행정과 기업 부문의 디지털사회 구현이 본격 추진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작년 3월 발표된 ‘2030 Digital Compass’ 전략을 토대로 5G 확충, 클라우드 컴퓨팅 및 빅데이터 활용 등 디지털산업 육성정책이 본격 추진되고, 기업들은 자율주행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실물부문과 디지털의 결합을 통해 디지털산업 강국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러시아에서는 전자상거래 배달 원격진료 이러닝 사이버보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둘째, 세계적인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여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개발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미국은 작년 11월 1.2조$ 규모의 Infrastructure Bill을 채택한데 이어 2.2조$ 규모의 Social Spending & Climate Bill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법들을 토대로 친환경 인프라 확충이 본격화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작년 7월 마련한 ‘Fit for 55’ 전략에 따라 플라스틱 배출권거래제 내연기관차 등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유럽그린딜 정책도 본격 시행될 것이다. 아세안국가에서도 싱가폴과 인도네시아가 탄소세를 도입하고, 러시아에서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에너지산업 개편이 추진된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해서 전략산업 육성과 자체 공급망 확충 노력이 강화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US Innovation & Competition Act’와 ‘Chips for American Act’를 제정, 반도체 첨단방위산업 등 첨단산업의 주도권 탈환 노력이 배가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 동맹 결성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제조기업들도 80% 이상이 북미지역 공급선으로 기존의 공급망을 교체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북미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직접투자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도 역내 자급률을 반도체는 현재 10%에서 2030년까지 20%로, 전기차 배터리는 6%에서 30%로 높인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수소 클라우드 등과 함께 자체 생산기반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세안 국가들과 인도는 자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국이 되도록 탈(脫)중국하려는 글로벌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올 상반기로 예상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RCEP) 협정의 발효도 우리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추가적인 무역장벽 완화는 차치하고라도 통일 원산지규정이 시행돼 복잡한 원산지 인증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또 올해 우리나라는 중국 및 여러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들과 수교 30주년, 중남미 국가들과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그 나라들과의 새로운 협력 틀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제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글로벌 환경이 기회로도 또는 위기로도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철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몇 개월 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 현 정부의 ‘신남방․신북방 전략’ 같은 대외정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대외 환경은 우리의 정치 시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권 교체기에 관계없이 정부와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글로벌 교역환경의 변화에 맞는 올바른 전략을 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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