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세계 3대 상인’ 하면 보통 아랍상인 유대상인 중국상인이 꼽힌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전통과 실력을 겸비한 상인집단이 있으니 바로 인도상인(印商)이다. ‘유대상인이 세계에서 가장 장사를 잘 하는데, 그 위에 아랍상인이 있고, 다시 그 위에 인도상인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상인집단도 잘 모른 채 연간 200억 달러를 교역하고, 현지에 500여 개의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래도 괜찮을까?

인도는 명목 GDP 기준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시장으로서도, 경제협력 파트너로서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과거에 실패한 일부 기업들의 사례를 이유로 현재 인도시장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필자는 코트라 사장 시절 인도에 소재하는 여섯 곳의 무역관장들에게 우리 기업들에게 인도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라고 주문했는데, 그 후 많은 보고를 접하면서 인도의 상인집단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업의 현지진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상인집단은 30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인도에서 상인은 예전부터 ‘바니야’(Baniya)라고 불리면서 농민과 함께 세 번째 카스트인 바이샤에 속한다. 이들은 영국의 식민지배 전까지는 장사와 외국과의 교역, 대부업 등 상업에 종사하다가 20세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제조, 금융, 통신,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현재는 인도경제를 이끄는 핵심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바니야는 전체 인구의 2%인 2500만 명 내외로 추산되는데, 10대 재벌 중 아홉이 이들 바니야 출신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마르와리 구자라티 파르시의 3대 상인집단이 유명하다. 이들은 어떤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점은 차이가 커서 인도 기업들과 비즈니스 할 때에는 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상인집단은 마르와리상인이다. 이들은 본래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타르사막에서 대상(隊商)으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콜카타와 뭄바이로 진출해 막대한 부(富)를 쌓아 현재는 인도 전역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인도 독립과정에서 큰 재정적 후원을 한 비를라그룹, 세계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 미탈, 통신산업의 강자 바르티 등이 있다. 이들 외에도 우리 수출기업이 인도나 해외에서 접하는 아가르왈, 오스왈, 반살, 굽타, 진달 등을 성(姓)으로 하는 많은 기업들이 이들 마르와리상인이다. 이들은 한번 돈이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알려질 정도로 검소하고, 시장 흐름을 읽는 판단력과 숫자 감각이 탁월하다고 한다. 일단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배팅하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으며, 선물거래에도 정평이 나 있다.  

두 번째는 ‘상인 사관학교’로 불리는 구자라티상인이다. 이들은 서북부 구자라트주(마하트마 간디와 모디 총리의 고향)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해양교통의 요충지라는 특성상 예로부터 중동․아프리카와의 교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진출했다. 마르와리상인이 주로 인도 국내를 활동무대로 한다면 구자라티상인은 인도 서부지역 외에 해외 비즈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시아 최고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의 릴라이언스그룹, 항만·물류·에너지의 아다니그룹, IT서비스의 위프로 등이 대표적인 구자라티상인이다. 이들도 마르와리상인처럼 평소엔 매우 근검절약하다가도 찬스가 오면 과감히 배팅하는 사업가 기질이 강하며, 권위의식 없이 실용이 철저하게 몸에 배 있다고 한다.

셋째는 숫자는 6만 명 정도로 많지 않지만 경제력은 막강한 파르시상인이다. 이들은 본래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페르시아인이었는데 7세기 중엽 아라비안반도의 신흥 이슬람세력에 의해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자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인도 구자라트지방으로 이주한 역사를 갖고 있다. 큰 체격과 푸른 눈, 금발 등 서양인 외모로 토착 인도인들과 쉽게 구별되는데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 소비재산업의 고드레지, 제4민항이자 제과기업인 와디아 등이 대표적인 파르시상인이다. 이들은 정직과 신뢰를 금과옥조로 삼으며 자녀 교육을 중시하고, 동쪽끼리 돕는 상조와 협업의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인도 파르시는 인구 수 대비 경제력, 교육수준, 평판 면에서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들 3대 상인집단은 척박한 환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막대한 부(富)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해 해외진출에 적극적이었고, 평소엔 검약하다가 결정적 찬스에서는 과감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위험에 맞서는 도전정신이 뛰어났다. 막대한 부를 갖고 있으면서도 권위주의와 허례허식 없이 겸손하고 실용적이며, 필요할 때에는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과감히 갖고 있는 부를 베풀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특히 그들은 공동체 간 상부상조와 교육을 통해 후진 양성에도 힘쓴 전통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IBM 구글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등 미국 유명 IT업계의 CEO 다수가 인도인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이러한 전통이 축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인도를 1인당 소득수준 2200 달러의 개도국이라고만 인식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강점과 잠재력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도와의 수교 50주년을 1년여 앞둔 현 시점에서 이제는 우리 기업들이 Post-China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와 비즈니스를 함에 있어서 상대기업이 어떤 배경과 전통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경제발전에 긴요한 기업가정신을 보완하는데 인도 상인집단으로부터도 시사점을 얻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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