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무슬림 인구 증가, 이슬람국가들의 경제성장 및 소비 증가 등으로 할랄 분야의 교역과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인도네시아할랄센터가 작성한 ‘할랄시장 보고서 2021/2022’에서 나온 내용이다. 세계적인 저성장과 낮은 교역증가로 상징되는 최근의 글로벌 교역환경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할랄시장은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할랄(Halal)은 원래 아랍어로 ‘허용된’(allowed) 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예언자 마호메트의 언행록(‘순나’)에서 무슬림들에게 지키도록 종교적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반대는 ‘금지된’ 이라는 의미의 ‘하람’(Haram)이다. 할랄시장은 처음엔 식료품과 의류에 국한되다가 오늘날에는 제약 화장품 미디어 여행 금융 등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고 시장규모도 커지고 있다.

세계 할랄시장 규모에 대해서는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앞서 언급한 인도네시아할랄센터 보고서에서는 금융 분야를 제외한 세계 할랄시장 규모를 2020년 현재 1.9조 달러로 추산하였다. 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년의 2조 달러에서 소폭 감소한 것으로 음식료품과 패션, 미디어 등 세 분야가 전체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분야별로는 음식료품 1조 1,850억$, 패션 2,790억$, 미디어․오락 2,160억$, 제약 940억$, 화장품 650억$, 여행 580억$이다. 세계 할랄시장은 앞으로 5년 동안 연평균 7.8% 증가하여 2025년에는 2.8조 달러로 커질 것이며, 여행 분야가 연평균 26%의 높은 성장세를, 그 외 분야는 6~7%의 완만한 증가세가 예상된다고 한다.

우리는 할랄시장이 이슬람 율법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들이 주도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각 분야의 산업강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교역규모가 연간 2천억$로 가장 큰 음식료품의 경우 브라질 인도 미국 러시아 중국이, 제약(연간 390억$ 교역)은 독일 프랑스 인도 스위스 미국이 수출 상위를 점하고 있다. 또 패션(연간 270억$ 교역)은 중국 인도 터키 이태리 베트남이, 화장품(연간 130억$ 교역)은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아일랜드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수입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UAE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할랄시장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시장규모가 더 커져 앞으로 우리 수출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랄시장의 주된 고객인 무슬림 인구의 증가가 할랄시장 성장의 첫째 요인이다. 현재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19억 명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하는데, 증가율이 비(非)무슬림보다 2배나 높기 때문에 무슬림 인구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둘째는 이슬람국가들의 높은 경제성장으로 구매력이 커지는 점이다. IMF에 따르면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들의 경제성장률은 2020~2026 기간 중 연평균 7%로서 세계 평균 6.4%를 상회한다. 또한 무슬림들의 할랄 준수가 확대되고 이슬람을 믿지 않은 사람들도 환경보호 또는 건강에 좋다는 등의 이유로 할랄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할랄시장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일부 이슬람 국가들은 종교적․경제적 이유에서 할랄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할랄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UAE의 ESMA, 사우디아라비아의 SFDA, 인도네시아의 BPJPH, 말레이시아의 JAKIM 등 할랄 인증을 부여하고 시장거래를 규율하는 정부조직을 설치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2억 3천만 명의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경우 과거에는 민간기구인 MUI가 인증업무를 담당했으나 할랄청(BPJPH)을 설치하여 인증을 국가업무로 흡수하고 MUI는 검사와 심의 역할만 담당하게 하였다. 또 2024년부터 음식료품을 시작으로 할랄인증 표기를 의무화함으로써 인증이 없으면 해당품목 수출이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8개 할랄 전용 산업단지를 개발 중인데, 기업들이 여기에 투자하면 인증절차 간소화 등 인센티브를 부여토록 하여 외국인투자의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 마디로 전문가도, 전문기관도 없고 할랄시장 진출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심도 높지 않다. 2019년 3월 말레이시아에 대한 정상(頂上) 방문 계기에 한-말레이시아 간 할랄산업 협력이 중요의제로 채택되었고, 필자가 코트라 사장으로 말레이시아 할랄개발공사(HDC)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협력이 본격화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시 파악한 바로는 말레이시아 할랄인증을 받은 우리 기업들은 약 150여개였는데, 현지의 JAKIM 인증이 아닌  한국무슬림중앙회(KMF) 인증이 대부분이어서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이 화장품과 라면 등 할랄식품 공장을 현지에 세워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고, 말레이시아 정부가 제조업과 한류 등의 강점을 가진 우리나라와의 협력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와 비즈니스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종교적 이유로 좋은 비즈니스 기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서구 기업들이 화장품과 약품 등의 할랄상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할랄시장을 우리 수출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키워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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