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권평오 한국해양대학교 석좌교수·전 KOTRA 사장·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페루의 잉카유적지 ‘마추픽추’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사람들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가는 관광명소다. 하지만 그 곳을 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페루 수도인 리마에 가서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 정도 걸려 옛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가야 한다. 해발 3300미터의 쿠스코공항에 내려도 끝이 아니다. 다시 관광버스나 열차를 타고 2시간 넘게 가서 협곡 가운데 있는 조그만 시가지에 도착한 후 다시 전용 미니버스를 타고 꾸불꾸불한 산길을 올라가야 2400미터 산꼭대기에 있는 마추픽추에 도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도합 서른 시간이 넘어 걸리는 고난의 길이다.

그런데 마추픽추 가기가 2025년 이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쉬워질 전망이다. 쿠스코와 마추픽추 중간에 있는 ‘친체로’라는 마을에 새 국제공항이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랑스럽게도 한국 기업이 설계부터 시공과 시운전에 이르는 프로젝트 전체를 맡고 있다. 친체로는 해발 37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가빠지는데,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 기술진이 현재 부지조성 및 본 공사를 함께 하고 있고 2025년경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친체로 신공항 건설은 페루의 40년에 걸친 숙원사업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현재 마추픽추에 갈 때 이용하는 쿠스코 아스테테 국제공항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한 복판에 있어서 공항 주변에 밀집한 주거·상업지역에 소음문제가 심각하다. 활주로가 짧아 인근 나라에서 대형 장거리 항공편이 내릴 수 없어 현재 연간 170만 명 정도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훌륭한 관광자원을 갖고도 공항문제로 관광수입을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활주로를 늘릴 여유 공간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의 높은 산악 장애물 때문에 항공안전에 위험도 많다.

그래서 페루에서는 오래전부터 신공항 프로젝트가 추진되다가 무산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가장 가까이는 2010년부터 페루정부가 민자(民資)유치 방식으로 신공항 건설을 추진했는데, 이마저도 금융조달 문제로 2017에 백지화됐다. 그러다 2018년 3월 페루정부가 우선 신공항 프로젝트의 설계 검토부터 시공사·감리사 선정, 기술지원,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반을 총괄 관리하는 사업자(PMO)를 정부간계약(G2G; Government to Government) 방식으로 선정하겠다고 공표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4~5개국이 참여의향서를 제출한데 이어 2019년 5월 최종제안서를 제출했는데, 그해 6월 우리나라 컨소시엄(한국공항공사, 도하엔지니어링 등 4개사)이 캐나다․프랑스․스페인 등을 물리치고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선정되었다. 그 후 G2G 계약협상을 거쳐 10월에 계약을 체결하고 11월에 친체로 현장에서 착공식을 갖게 되었다.

친체로 신공항은 수도 리마에서 남동쪽으로 564km, 마추픽추에서 50km 떨어진 곳에 길이 4km 활주로(1개)와 4만7000㎡ 규모의 여객터미널 등으로 건설되는데, 완공되면 중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해져 인근 국가들에서는 리마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올 수 있게 된다. 페루정부는 공항 이용자가 현재의 3배 수준인 최대 연간 57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령에는 외국과 정부간계약(G2G) 방식으로 일반물자(인프라 포함) 및 방산물자를 수출할 때 한국 측 계약 당사자는 코트라 사장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코트라가 국내 참여기업의 의견을 종합해서 외국정부와의 협상과 계약체결을 맡는다. 일반 수출거래와 달리 정부간계약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수출국 정부(공공기관 포함)가 세부 사업자 선정 및 조건 등을 투명하게 하고 계약체결 후 이행도 책임지도록 함으로써 수입국 입장에서는 정치적 시비 거리도 없애면서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남미나 동남아의 정부․공공기관이 시행하는 물품구매 및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자주 이 방식이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2009년 관련 제도가 도입된 후 지금까지 20여건을 G2G 방식으로 수출한 바 있다.  

친체로 신공항 총괄관리 사업자(PMO) 선정절차가 막바지였던 시기, 코트라 사장이었던 필자는 담당 직원들에게 한국 컨소시엄이 PMO로 선정되면 바로 이어질 부지조성과 본 공사의 사업자 선정에도 유리해질 것이니 반드시 수주하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면서 진행상황을 점검하곤 했다. 이 예상은 뒷날 현실화되었다. 한국 PMO 주관 하에 경쟁입찰로 진행된 부지조성공사 시공자(1600억 원)로 한국 건설사와 페루기업 컨소시엄이 선정된데 이어, 건설 본 공사 시공자(5400억 원)로도 한국 건설사와 복수 외국기업 컨소시엄이 선정되었다. 둘 다 국내 건설사가 주관기업인데, 세계 건설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스페인․이태리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PMO 사업자로 한국 컨소시엄이 선정됐던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이유라고 생각된다.

친체로 신공항 프로젝트는 우리 해외인프라 건설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선진국의 주 무대였던 해외 공항건설을 설계부터 시운전까지 국내기업이 건설하는 최초 사례로서 향후 유사한 해외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경쟁력을 쌓는 경험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 컨소시엄이 쟁쟁한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을 이기고 친체로 신공항건설 PMO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성공의 핵심 요인은 ‘팀 코리아’였다고 확신한다. 정부간계약은 기업 혼자서는 결코 성사시킬 수 없다. 정부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해외공관, 코트라․국책은행 등 관련 공기업, 민간기업 등이 한 팀으로 협업체제를 갖춰 외국 발주기관에게 우리의 강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루 친체로 고원에서 ‘팀 코리아’의 저력이 있었기에 신공항 프로젝트를 우리 기업이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친체로 신공항 사례가 앞으로의 해외 건설 및 프로젝트 수주에 귀중한 참고가 되어 제2, 제3의 성공사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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