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만기 도래 공사채 규모 최대 8조…발행 더 확대할 전망

수출입은행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올해 첫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공급망안정화기금에 필요한 자금과 전세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사고가 급증하면서 자금 수혈이 절실해진 두 공기업이 채권 발행에 시동을 걸면서 공사채 '블랙홀'에 따른 수급 불균형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한국전력이 4월 총선 이후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회사채 발행을 앞둔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져 가고 있다.
13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현재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 기본법)'에 따라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발행하는 공급망안정화기금채권에 대한 국가보증동의안을 통과시켜 본격적인 기금 운용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발행액은 정부안대로 원화 기준 5조원 안팎으로 만기는 10년 이내다. 채권은 공급망 기본법 시행일인 오는 6월 27일 이후 연내 발행된다. 조성된 재원은 경제 안보 품목과 경제 안보 서비스 확보·도입·공급을 비롯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국내외 시설 투자 및 운영, 공급망 충격으로 인한 피해기업 긴급 지원 등에 쓰인다.
HUG도 전세 사기 피해에 따른 보증 사고와 부동산 PF 수습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공사채 발행을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HUG가 집계한 전세 보증 사고 건수는 1만9350가구로 피해액만 4조3347억원에 이른다. 2022년(5443가구 대상 1조1726억)과 비교하면 사고 가구 가구는 255.5%, 피해액은 269.7% 급증했다. 같은 기간 HUG가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지급하기 위해 지출한 대위변제금은 3조5544억원으로 전년 대비 284.6%나 치솟았다.
지난해 HUG는 5조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전체 347개 공공기관의 순손실이 13조6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HUG 혼자 3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HUG의 지원 기능을 강화했다. 정부는 HUG의 PF 보증 여력을 기존 10조원에서 15조원으로 확대하고 사업장별 보증 한도를 총사업비의 50%에서 70%로 키운다. 또한 PF 대출 대환 보증을 신설해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사업장의 저금리 PF 대출 전환을 지원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정 부담이 막심해지자 지난달 20일 HUG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4배 미만으로 공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최근 4조원 규모의 현물 출자 방식의 유상증자 등을 마무리하면 HUG 납입자본금은 8조7759억원으로 증가한다. HUG는 이제 최소 30조원이 넘는 자금을 공사채로 수혈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공사채들이 연일 채권시장에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는 민간 기업의 회사채 수요가 급감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관들이 자금을 쏟아내는 '연초 효과'가 끝나고 회사채 시장 훈풍이 끝물에 접어들면서 채권시장에서 흥행 참패 사례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 7일 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고작 1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고 지난 11일 이자율 범위 상단을 6.8%에서 6.9% 올렸다. 금융당국의 기준에 못미치는 취약한 재무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중견 건설사인 HL D&I는 부동산 PF 불안 여파로 약 7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액 미매각이라는 쓴맛을 보게 됐다. 회사채 만기도 1년물로 짧았고 공모 희망금리도 최대 8.5%를 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석유화학 부문 업황 부진 우려 속에 최근 여천NCC도 1500억원 규모의 2년물 회사채를 발행하고자 수요예측에 나섰으나 매수 주문량은 250억원에 그쳤다.
심지어 4월 총선 이후 한전이 공사채 발행에 나설 수도 있다는 소식에 민간 기업의 긴장감을 더욱 커지고 있다. 한전채(한국전력이 발행하는 채권)는 지난해 9월 이후부터 발행되지 않고 있으나 공사채 순발행액이 좀처럼 꺾이지를 않으면서 이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공사채(특수채) 순발행액은 2조4863억원으로 1월에는 순상환(4451억원) 기조였으나 2월 들어 순발행(2조4059억원)으로 돌아선 뒤 3월에도 5020억원 순발행 기조를 유지하며 꾸준히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1~2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공사채 규모가 최대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공사채의 채권시장 침공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