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공백 틈타 기업들 제품가 줄인상…소비자물가 자극
원부자재·인건비 오르고 환율 상승으로 원재료 단가 높아져

올해 들어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상승세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전체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고환율, 인건비·에너지 비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이 계속 뛰고 있다.
행정부 리더십 공백, 탄핵 정국 장기화에 최근까지 식품·외식 기업 약 40곳이 제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하며 물가를 올렸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기업들의 가격 인상이 주춤해질지 주목된다.
6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기업들이 가격을 올린 커피(8.3%), 빵(6.3%), 햄과 베이컨(6.0%)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외식(3.0%)도 2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지수는 1년 전보다 2.1% 올랐는데 외식과 가공식품이 전체 물가를 각각 0.42%포인트, 0.30%포인트 끌어올렸다.
올해 들어 3개월간 커피, 빵, 냉동만두, 과자, 아이스크림 등이 줄줄이 올랐다.
이달 초에도 라면(오뚜기), 맥주(오비맥주), 햄버거(롯데리아) 등의 가격이 인상됐다.
최근 몇 달 사이 CJ제일제당, 대상, 동원F&B, 롯데웰푸드, 오뚜기, 농심, SPC삼립, 오리온 등 식품 대기업이 가격을 인상했다. 가격을 올리지 않은 기업과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기업들은 원부자재와 인건비 등이 오른 데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 단가가 높아져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호소한다. 또 지난해 정부로부터 물가안정에 동참해달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가격 인상을 미루면서 부담을 감내해왔다고 기업들은 주장했다.
기업들의 가격 인상이 잇따르는 이유는 정국 혼란으로 정부의 물가 관리가 힘을 받지 못한 틈에 가격 인상을 서두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계엄 사태 이후의 가격 인상 행렬은 끝나더라도 먹거리 물가가 단기에 안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식품·외식 기업의 가격 인상 사례는 앞으로도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관세 전쟁으로 자유무역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가속화하고 이는 국내 먹거리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여전히 1400원대에 머물러 원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11월 1400원을 돌파한 이후 5개월이 지나도록 1400원을 훨씬 상회하는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원가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환율 급등 여파로 한 대형마트에서 올해 연간 물량으로 계약한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 단가가 지난해보다 약 10% 올랐다. 미국·호주산 소고기도 환율에 비례해 꾸준히 판매가가 상승하는 추세다.
기후변화도 물가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 폭염, 집중호우, 극한 기상현상 등 기후변화로 농산물 등 가격이 상승하는 기후플레이션(기후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은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배추는 1년 전보다 49.7% 오르고 무는 86.4% 상승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작황이 부진해 식탁 물가가 오른 대표적 사례다.
외국의 기후변화 현상도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브라질·베트남의 커피 원두와 서아프리카의 코코아(초콜릿 원료) 생산이 급감하자 국내에서도 커피와 초콜릿 가격이 올랐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 산불 등의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높아져 농수산물 생산이 감소하기도 한다.
최근 경북 산불로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9%가 직간접적 피해를 봤으며 마늘, 고추 등도 피해가 있었다. 통계청은 이번 산불 피해로 일부 농산물 가격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