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젠트' 를 보았다. 원래 킹스맨의 찐팬이어서 1, 2편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번 3편은 스토리와 연기가 전편들을 압도힌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큰 역할을 맡아 시선을 빼앗는 인물이 있다. 제정 러시아시대의 실존인물 라스푸틴이다. 

떠돌이 수행자였던 라스푸틴은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의 병세를 호전시킨 공으로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환심을 샀고 이를 이용하여 국정농단을 자행하였다. 심지어는 러시아군 장성들이 수립한 군사작전을 신의 계시라며 작전지역을 변경시켜 대패배를 불러오기까지 하였다. 라스프틴에게 눈과 귀를 빼앗긴 황제는 대신들과 충신을 멀리하고 끝까지 요물인 라스푸틴을 끼고 돌았다. 마침내 국정파탄에 이르러 10월혁명이 터져나왔고 황제 일가는 모두 총살을 당하고 왕정도 무너지고 말았다. 한때 황제를 조정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던 라스푸틴도 혁명군중들에게 쫒겨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우리 역사에도 라스푸틴에 견줄만한 인물이 있다. 고려 공민왕시절의 신돈이다. 신돈은 사찰에서 일하는 여종의 자식이었다.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미천한 출신이다. 세상을 원망하며 살던 그는 권력을 잡기위해 온갖 사술을 동원하였다. 마침내 노국공주를 잃고 시름에 빠진 공민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권력을 얻고 국정농단을 자행히였다. 원로 중신들이 그를 고발하다가 거꾸로 파직을 당하거나 귀양을 갈 정도였다. 여러 신하들이 그를 견제하자 왕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믿겠다는 신임서약서를 받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도 국정농단을 일삼다가 왕의 신임을 잃자 반역을 꾀했다. 이게 발각되어 결국 유배를 갔다가 참살당하였다.  

절대권력자는 외롭다. 

절대권력은 절대고독과 한몸이다. 절대고독은 여러 사람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다. 절대신임하는 최측근의 위로로 버텨나간다. 라스푸틴이나 신돈은 절대권력자의 절대고독을 읽고 절대고독이 가져온 마음의 구멍을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돈을 모으는데는 관심이 없다. 권력을 즐기고 세상을 우롱하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또한가지 공통점은 음탕한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다. 라스푸틴도 신돈도 낮에는 성인처럼 밤에는 색광처럼 살았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대통령도 절대권력이 있었고 절대고독이 있었다. 박대통령에게는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고 측근들이 배신하는걸 목격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 절대고독을 파고든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인물이다. 대단한 권력을 행사한건 아니지만 십상시 소리까지 듣던 대통령측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박근혜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세력은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고 이를 탄핵의 불씨로 삼았다. 만약 박근혜대통령 옆에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탄핵으로까지 몰렸을까. 최순실은 결코 라스푸틴이나 신돈급은 아니었지만 정치적 반대세력에게 빌미를 준 것이다. 절대권력자가 왜 측근관리를 엄격하게 해야하는지를 각성시킨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후보 모두 가슴이 타들어 간다. 선거는 승자독식의 게임이니 인생 모든걸 내걸고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벌써 절대고독의 쓴맛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번 3월9일 선거를 통해 탄생하는 새정권에는 대통령의 신임을 밑천으로 국정을 휘두르는 인물이 나타날까. 라스푸틴이나 신돈급은 아니어도 국정을 쥐고 흔들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5년 단임의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헌법에는 삼권분립이 나와있지만 국회의장도 대법원장도 대통령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정부 각 부처장관과 여러기관의 장에 대한 임면권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 눈치를 볼수 밖에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고독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절대고독은 요사스런 인물과 연결되기 쉽다. 라스푸틴도 신돈도 이런 구도에서 등장했고 파멸하였다. 문제는 그들이 파멸할 때 나라도 함께 망한다는 것이다. 

요즘 여야 대선후보캠프 모두 무속인과 역술인이 연관되어 구설을 겪고 있다. 먼저 국민의 힘은 선대본부산하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 '00법사'라는 무속인이 고문 직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에서는 이 무속인이 인재영입까지 하고 있고 후보에게도 여러가지 비과학적 조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국민의 힘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문제는 이 인물이 실제로 선대위에 들락거린 것이 언론 취재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전부터 내가 윤후보의 멘토라고 떠들고 다녔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민의 힘은 논란이 커지자 아예 네트워크본부를 해체시켰다. 더 이상 논란이 커지는 것을 원천차단한 것이다. 

야당후보 캠프에 무속인 고문이 활동하고있다고 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 캠프에서는 역술인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 1월 4일 선대위 4050상설특별위원회 산하 종교본부 발대식을 갖고 일곱명에게 임명장을 주었는데 그중에 한명이 유명한 역술인이라 논란이 된 것이다. 이 역술인은 노태우대통령 때부터 역대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인지를 맞힌 것으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역술인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은 '무속인과 역술인은 다르다' 라는 옹색한 해명을 하고 있다. 여야 모두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굿판 벌이고 점보는 사람들을 대선캠프에 끌어들이는가.

21세기 인공지능시대에 대한민국 대통령후보 곁에 무속인이나 역술인이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면 섬뜩한 일이다. 합리성과 과학성을 중시하는 2030 MZ세대들은 무속인, 역술인 논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행태를 보이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젊은이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대선캠프에는 온갖 인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나라를 위하고 후보를 위해서  모인 사람이 많겠지만 흑심을 숨기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지금도 라스푸틴같은 인물은 여야 대통령후보 곁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절대권력자에게 미리 절대신임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다. 이런 인물은 대통령당선이 확정되기 전에 미리 차단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로 온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겪었으면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하지않겠는가. 대통령을 뽑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혹세무민으로 국정을 농단할 미래의 라스푸틴을 사전에 제거하는 일이다. 유권자가 현명해야 정치가 건전해지고 나라가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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